한국은행이 연내에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RP 매입은 코로나19 대유행 등 위기가 발생하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비정기적으로 이뤄졌는데, 이를 정기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유동성 수급 환경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사들도 한은에 보유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직접 자금을 공급받을 길이 열린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공대희 한은 금융시장국 공개시장부장은 30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별관에서 한은과 한국금융학회가 공동 개최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개시장 운영 개선 방안을 공개했다.

공 부장은 “최근 시장의 초과 유동성(현금 통화와 지급준비예치금을 더한 본원통화) 규모가 줄고, 금융시장 내 비은행 부문 비중 확대로 수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유동성 수급에 일시적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한은 공개시장 운영도 유동성 흡수 일변도에서 벗어나 흡수와 공급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그동안 매주 목요일 정례적으로 RP를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왔다. 시중금리가 기준금리에 연동돼 움직이도록 하는 공개시장 운영 수단이다. 반면 RP 매입은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코로나19 사태 등 위기 상황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한은이 RP를 매입하면 경제가 좋지 않다는 부정적 신호를 시장에 준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RP 매입을 아예 정례화하기로 한 배경이다.

시중 유동성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RP 매입 정례화를 추진한 이유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환영사에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추세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커지고,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가 증가하는 등 유동성 수급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는 저출생·고령화 심화,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정책금리가 제로 하한 수준에 근접하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구조 변화에 맞춰 통화정책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좌동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