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독일 출신 중견 남성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현재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독자적인 음악관과 뛰어난 기량으로 화제를 모았고, 최근에는 ‘트럼프의 미국에서는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꾸준히 방문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몇 년은 해마다 1회 이상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이다.

2023년 10월에는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2024년 9월에는 서울시향과 내한 공연을 가졌는데 두 공연 모두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었다. 독주회로 따지자면 2023년 3월 8일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때는 반주자 없는 바이올린곡만 연주했었다. 반면 지난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은 피아노 반주가 붙은 곡들로 이루어졌다.

테츨라프의 연주 스타일은 날카롭고 명민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이번 연주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첫 곡인 요세프 수크(드보르자크의 제자이자 사위인 체코 작곡가이다)의 ‘네 개의 소품’부터 음조와 음색을 대단히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테츨라프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드뷔시를 방불케 할 만큼 인상주의적이었던 1악장, 단호하고 날카로운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을 철저하게 통제한 2악장, 자연스럽고 힘들이지 않는 느낌을 준 3악장, 무궁동 풍의 악상을 고도의 기교로 능숙하게 연주해낸 4악장 모두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브람스는 테츨라프의 장기에 속하는 작곡가이며,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역시 그의 핵심 레퍼토리에 속한다. 1악장은 첫머리가 여느 연주자에 비해 섬약하게 들렸지만, 대단히 폭넓은 음색 대비를 선보이면서 과감하게 진행되었다, 2악장은 차분하고 정화된 분위기였으며, 4악장은 담담한 편이었던 3악장과는 물론 자체 내에서도 엄청난 대조를 선보였다. 테츨라프는 통렬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이 악장에서 특히 예리한 표현력을 선보였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만, 카롤 시마노프스키는 쇼팽 이후 폴란드가 낳은 최초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후기낭만주의의 대가이다. 이번에 연주한 것은 <신화> 중 3악장 ‘드리아데스와 판’(드리아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정령, 판은 목신이다)인데,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테츨라프와 반주를 맡은 키벨리 되르켄은 후기낭만적인 두터움이나 유려함보다는 더 현대적인 해석을 선보였다. 이 곡에는 판의 플루트 소리를 묘사한 바이올린의 하모닉스 주법 등 예민하고 절묘한 표현력을 요구하는 대목이 많은데, 이는 테츨라프에게 잘 맞는 요소이며 실제로 연주도 훌륭했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 독주회의 만년 인기곡이며, 특히 최근 몇 년에는 국내에서 더욱 자주 연주되는 경향이 있어 차별화된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식상하게 들릴 여지마저 있다. 그러나 테츨라프는 역시 테츨라프였다. 그는 우아함과 유려함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았다. 이음매가 잘 느껴지지 않는 연주여서 유려하게 들릴 법도 했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음조가 그런 느낌을 막았다.

맨 마지막까지 민감함과 날카로움이 두드러진 연주였고, 2악장 후반부의 엄청난 속주는 인상적이었다. 이 곡은 썩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피아노 파트를 엄청나게 고생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되르켄은 전체적으로는 바이올린에 잘 맞춰주었지만 독주 대목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구사했다. 비록 2악장 중간부에서 테츨라프가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역시 색다른 해석과 높은 완성도가 결합한 수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연 내내 일관된 해석을 선보였던 테츨라프였지만, 청중의 환호에 화답해 앙코르로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중 2악장 ‘느리게, 풍부한 표정으로’에서는 날카로움을 다소 누그러뜨려 한결 차분하고 부드러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는 악상 자체가 요구하는 바에 부응한 것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테츨라프는 어디까지나 테츨라프이고, 그에게서 다른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터이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