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이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에서 한경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열음은 캐나다 국립아트센터오케스트라와 오는 29~31일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공연한다.  문덕관 사진작가 제공
손열음이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에서 한경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열음은 캐나다 국립아트센터오케스트라와 오는 29~31일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공연한다. 문덕관 사진작가 제공
손열음이 2011년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선보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연주는 한국 음악계가 세계에서 빛난 역사로 남아 있다. 이 곡을 다룬 한 유튜브 영상이 지난달 30일 기준 조회수 2500만 회를 넘겼을 정도다. 손열음이 세계 사람이 듣는 음악인이 된 데는 일찍이 영재를 알아본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박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아 오는 23일 추모 음악회를 여는 손열음을 최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금호아트홀에서 만났다.

◇ 금호영재콘서트에서 인연

박 회장은 한국 음악가들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1984년 총수에 올라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키운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계 지원에 힘을 쏟았다. 1998년엔 영재들만으로 콘서트를 꾸리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 금호영재콘서트에서 열두 살 강원도 소녀 손열음도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저와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리, 권혁주, 첼리스트 고봉인 이렇게 4명이 1~2주 간격으로 공연했어요. 그해 7월 공연엔 회장님이 리허설을 보셨습니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으면 사 주겠다’고 하신 첫 대화도 생각나요.”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왼쪽)과 10대 시절의 손열음.  금호문화재단 제공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왼쪽)과 10대 시절의 손열음. 금호문화재단 제공
손열음에게 박 회장은 친근한 할아버지로 남아 있다. 연습에 전념할 수 있는 피아노를 새로 마련해준 것도 박 회장이다. 처음엔 한국에서 만든 콘서트용 피아노를 사주려고 했다. “콘서트용 피아노를 따로 놓을 자리가 없어서 사양했더니 회장님께서 ‘내가 갖고 있는 뵈젠도르퍼 피아노라도 가져가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어디선가 유기된 뵈젠도르퍼를 잘 관리해서 주셨는데 회장님은 그게 마음이 안 좋으셨나봐요. 성에 안 차는 걸 줬다고 생각하셨는지 ‘곧 좋은 악기를 사주겠다’고 하셨죠.” 박 회장의 호에서 이름을 딴 ‘문호(雯湖)홀’이 생긴 뒤엔 손열음을 비롯한 음악인들이 자주 놀러 갔다고.

◇ 20주기 추모 음악회

추모 음악회는 박 회장과의 인연이 담긴 곡들로 준비했다. 1부에선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아베크 변주곡’과 멘델스존의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를 위한 명상곡’, 라벨의 ‘무용시, 라 발스’를 연주한다. “멘델스존과 차이콥스키는 박 회장님을 만난 첫 공연에서 선보인 곡이에요. 라 발스는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뵀던 2005년 1월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친 곡이고요.” 2부에선 슈만으로 돌아가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한다.

“2부는 한 번도 들려드리지 않은 곡을 치기로 했어요. 슈만은 제 20대와 30대 초반을 관통한 음악가예요. 이번 공연 프로그램을 짤 때 회장님이 어떤 곡을 좋아하셨는지 생각해 봤어요. 딱히 무슨 곡이 좋다고 말씀한 적은 없는데 빠르고 신나는 곡이 좋다고 하신 게 기억나더라고요. 이번에는 생기있는 음악을 골랐습니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해 한층 성장한 인간으로서, 음악가로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물었다. “20대엔 배우는 걸 엄청 좋아했습니다. 맨날 새로운 걸 알고 싶어 했죠. 빨리 배워서 여러 곡이나 일을 하려고 했어요. 30대 초·중반에 들어서니 무언가를 확고히 하는 작업이 끌리더라고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배워왔으니까 이젠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는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 “음반은 예술의 유일한 보완재”

손열음은 지난달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G장조를 앨범으로 선보였다. “라벨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작품 세계가 달라졌어요. 인류 전체가 전쟁에 휘말린 첫 시대잖아요. 우리 역사를 보면 1800년대까진 유럽 사람들과 별다른 연관이 없다가 20세기부터 달라져요. 이번 라벨 음반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녹음했습니다. 헤이그는 우리에겐 (이준) 열사 사건으로 기억되는 곳이죠. 유럽인과 같은 비극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보니 이번 작업이 더 특별했습니다.” 손열음은 라벨 공연도 준비했다. 캐나다 국립아트센터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오는 14~16일 캐나다에서, 29~31일 한국에서 공연한다.

손열음의 이름은 ‘열매를 맺음’에서 따왔다. 새로 맺고 싶은 열매가 뭔지를 묻자 그는 “녹음을 많이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음반이야말로 제가 하는 예술의 유일한 보완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대부분을 음반으로 접해서 알아요. 누군가에게 음악과 음악성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차이콥스키 소품곡 하나를 쳤는데 이런 소박한 곡들, 공연에서 잘 연주하지 않는 곡들을 음반으로 내고 싶습니다.”

이주현 기자

※손열음 인터뷰 전문과 다양한 화보는 ‘아르떼 매거진’ 1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