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폰기의 세 미술관이 그려낸 '아트 트라이앵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도쿄 미술관의 세계 ②]
기업인들이 만든 미술관 & 가볼 만한 미술관들 2부
기업인들이 만든 미술관 & 가볼 만한 미술관들 2부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
150년 전 미술관 벨트가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 도쿄 우에노. 전통으로 승부하지만 어쩐지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에노의 대항마로 등장한 롯폰기는 세련미를 지향한다. 롯폰기 미술 중흥 프로젝트의 주역은 이 지역 미술관 세 곳을 꼭짓점으로 잇는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이다. 높이 238m 모리타워 최상층에 자리 잡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으로 유명한 모리미술관, ‘소장품 없는’ 그랜드급 전시관을 자랑하는 국립신미술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생활 속 미’를 추구하는 산토리미술관이 주인공이다.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은 한 미술관을 관람한 뒤 티켓을 제시하면 다른 두 미술관 입장료를 깎아주는 ‘아토로 할인’ 등으로 서로 끈끈한 연대를 모색한다.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 / 사진출처. Suntory, Art Triangle Map
하늘로 올라간 모리미술관
지상은 시시하다는 듯 모리미술관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이 미술관은 일본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이 재개발한 롯폰기힐스의 핵심 빌딩 ‘모리타워’ 53층에 있다. 모리 미노루 모리빌딩 회장은 롯폰기힐스 구상 초기부터 ‘문화 도심’을 목표로 정하고 2003년 도쿄 어디에서나 보이는 모리타워 최상층에 미술관을 개관했다. 회화, 사진, 드로잉, 조각, 영상, 설치 등 컬렉션만 480점에 달한다.
L'Arbre Blanc (The White Tree) / 사진. © Iwan Baan/MORI ART MUSEUM
일본 간사이, 오사카 엑스포 2025 그랜드 링의 소우 후지모토 모델(설치 렌더링) / 사진. © Sou Fujimoto Architects/MORI ART MUSEUM
모리미술관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에서 미술을 즐기려는 사람들, 도쿄에 매혹돼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기 위해 ‘현대성’과 ‘국제성’을 내세운다. 다양한 지역의 선구적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창조 활동을 독자적 시선으로 소개한다. 현재는 ‘머신 러브: 비디오 게임, AI와 현대 아트’를 주제로 약 50점을 전시하고 있다.
모리미술관에 올라가기 전 예고편을 보듯 지상에서도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모리타워 앞마당엔 낯익은 거대한 거미가 알을 품고 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영국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도 있는 대형 거미 조각이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다. 마망 옆에는 8m에 달하는 장미꽃 한 송이가 관람객을 굽어본다. 조각과 공간, 환경이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독일 작가 이자 겐츠켄의 ‘장미’다.
[좌]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Maman)' (1999/2002). 모리 빌딩 소장 / 사진. © Mori Building Co./MORI ART MUSEUM [우] 이자 겐츠켄의 ‘장미’ (1993) / 사진출처. © moguphotos/flickr
‘소장품 없는’ 국립신미술관
2007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괴짜 후보가 나타났다. 월급을 1엔만 받겠다는 공약을 내건 구로카와 기쇼 공생신당 대표다. 그의 도전은 2.9%라는 낮은 득표율로 끝났고 그는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당 이름으로 지은 ‘공생’은 사실 건축가였던 구로카와 기쇼(1934~2007)의 건축 이념이었다.
그해 1월 개관한 국립신미술관은 구로카와의 유작이다. ‘숲속 미술관’을 콘셉트로 설계한 이 미술관 전면은 파도처럼 물결치는 유리 커튼월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원뿔형 출입구와 함께 독특한 외관을 연출한다. 일본에서도 미술관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 구로카의 공생을 테마로 지어졌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외관 / 사진. © NACT
탁 트인 1층 로비에서는 유리 너머 아오야마공원의 사계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을 통해 도시와 자연을 연결했다. 국립신미술관은 소장품이 없다. 그 대신 일본 최대 규모 전시 공간(1만4000㎡)을 활용해 다양한 전시회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술관 전체가 화이트 큐브인 셈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오르세미술관·퐁피두센터 등 유명 미술관 작품을 소개하는 블록버스트급 전시를 열어왔다. 현재는 ‘거실 모더니티’를 주제로 1920~1970년대 유명 건축가의 단독주택 걸작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신지 오마키: 존재의 인터페이스> 설치 전경사진. © 키오쿠 케이조(Keizo Kioku)
<우주 속의 산책 – 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전시 전경 / 사진. © Kenryou Gu, Wen-You Cai and Mengjia Zhao/Cai Studio
드넓은 미술관을 걷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곳도 충분하다. 미술관 중간중간 놓인 명품 의자에 앉아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덴마크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의 ‘Y 체어’, 아르네 야콥센의 ‘스완 체어’ ‘세븐 체어’ ‘에그 체어’ 등이 대표적이다. 언제 방문해도 도심 속 자연을 벗 삼아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는 도쿄 중장년층을 쉽게 볼 수 있다.
‘생활 속의 미’ 산토리미술관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히비키’로 유명한 산토리는 1899년 창립 이후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의 ‘이익 삼분주의’를 경영 철학으로 삼아왔다. 사업으로 얻은 것은 재투자할 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사회 환원으로 나눠야 한다는 의미다. 2대 사장 사지 게이조는 일본 고도 성장기에 “마음의 풍요로움이 중요하다”며 문화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1961년 산토리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마루노우치에 문을 연 산토리미술관은 1975년 아카사카로, 2007년 3월 미드타운(롯폰기)으로 옮기며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기업 미술관이 보통 설립자 취향대로 작품을 수집·전시하는 것과 달리 산토리미술관은 처음부터 위원회를 만들어 ‘생활 속 미’라는 기본 이념에 맞는 컬렉션을 갖춰왔다. 소장품은 회화, 도자기, 칠공예 등 일본 고미술부터 동서양 유리 작품까지 3000점에 달한다. 국보 1점, 중요문화재 16점도 갖고 있다. 연간 6회가량 기획전을 개최하는데, 매년 방문객 약 30만 명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산토리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마의 목표는 ‘도시의 거실’ 같은 편안한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 간 융합을 기조로 도쿄라는 시끄러운 도시 속 조용한 거실이 되길 바라며 설계도를 그렸다. 외관은 백자 재질로 만든 세로 격자를 덮어 모던한 감각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뽐낸다. 실내는 나무와 일본 전통 종이를 사용해 자연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빛을 표현했다. 바닥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조회사답게 위스키를 숙성하는 오크통을 재활용했다.
산토리 미술관 / 사진. © SUNTORY FOUNDATION FOR THE ARTS
일본 근현대 미술의 최전선
우리에겐 낯설지만 일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존재가 ‘일왕’이다. 일본에서 왕은 ‘통치하지 않는 인간 신’이다. 그런 그가 사는 곳이 도쿄 고쿄(황거)다. 일본 최초 국립미술관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그 고쿄 바로 옆에 있다.
1952년 개관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근현대 미술품을 수집하는 동시에 다양한 전시회를 열어 미술의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화, 판화, 수채, 소묘, 조각, 사진, 영상 등 1만4000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갖고 연 5회가량 전시마다 약 200점을 전시한다. 요로즈 데쓰고로의 ‘나체 미인’, 기시다 류세이의 ‘레이코 초상’, 고가 하루에의 ‘바다’, 아이 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좌측부터] 요로즈 데쓰고로의 '누드 미인' (1912), 기시다 류세이의 ‘레이코 초상’ (1921), 고가 하루에의 ‘바다’ (1929) / 그림. ©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MOMAT)
아이미츠 '눈이 있는 풍경' (1938) / 그림. ©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MOMAT)
일본 현대미술 최전선엔 도쿄도현대미술관이 있다. 1995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일본 전후 미술을 중심으로 약 6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컬렉션은 연간 3~4회에 걸쳐 매회 100~200점을 소개한다. 도쿄도현대미술관의 상설전은 전후 현대미술 계보를 대표 작품으로 정리한다. 특히 1960년대를 풍미한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낯익은 작가의 팝아트 작품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기획전도 연간 6~8회 열린다.
도쿄도현대미술관이 하루아침에 수천 점을 소장하게 된 것은 아니다. 소장품의 약 절반은 1926년 개관한 도쿄도미술관에서 가져왔다. 일본 동시대 미술 발표의 장이었던 도쿄도미술관은 전시회 등으로 형성한 약 3000점을 도쿄도현대미술관에 물려줬다.
도쿄도 현대미술관 - MOT / 사진. ©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도쿄=김일규 특파원
150년 전 미술관 벨트가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 도쿄 우에노. 전통으로 승부하지만 어쩐지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에노의 대항마로 등장한 롯폰기는 세련미를 지향한다. 롯폰기 미술 중흥 프로젝트의 주역은 이 지역 미술관 세 곳을 꼭짓점으로 잇는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이다. 높이 238m 모리타워 최상층에 자리 잡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으로 유명한 모리미술관, ‘소장품 없는’ 그랜드급 전시관을 자랑하는 국립신미술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생활 속 미’를 추구하는 산토리미술관이 주인공이다.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은 한 미술관을 관람한 뒤 티켓을 제시하면 다른 두 미술관 입장료를 깎아주는 ‘아토로 할인’ 등으로 서로 끈끈한 연대를 모색한다.

지상은 시시하다는 듯 모리미술관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이 미술관은 일본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이 재개발한 롯폰기힐스의 핵심 빌딩 ‘모리타워’ 53층에 있다. 모리 미노루 모리빌딩 회장은 롯폰기힐스 구상 초기부터 ‘문화 도심’을 목표로 정하고 2003년 도쿄 어디에서나 보이는 모리타워 최상층에 미술관을 개관했다. 회화, 사진, 드로잉, 조각, 영상, 설치 등 컬렉션만 480점에 달한다.


모리미술관에 올라가기 전 예고편을 보듯 지상에서도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모리타워 앞마당엔 낯익은 거대한 거미가 알을 품고 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영국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도 있는 대형 거미 조각이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다. 마망 옆에는 8m에 달하는 장미꽃 한 송이가 관람객을 굽어본다. 조각과 공간, 환경이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독일 작가 이자 겐츠켄의 ‘장미’다.
![[좌]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Maman)' (1999/2002). 모리 빌딩 소장 / 사진. © Mori Building Co./MORI ART MUSEUM [우] 이자 겐츠켄의 ‘장미’ (1993) / 사진출처. © moguphotos/flickr](http://img.www5s.shop/photo/202505/01.40404862.1.jpg)
2007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괴짜 후보가 나타났다. 월급을 1엔만 받겠다는 공약을 내건 구로카와 기쇼 공생신당 대표다. 그의 도전은 2.9%라는 낮은 득표율로 끝났고 그는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당 이름으로 지은 ‘공생’은 사실 건축가였던 구로카와 기쇼(1934~2007)의 건축 이념이었다.
그해 1월 개관한 국립신미술관은 구로카와의 유작이다. ‘숲속 미술관’을 콘셉트로 설계한 이 미술관 전면은 파도처럼 물결치는 유리 커튼월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원뿔형 출입구와 함께 독특한 외관을 연출한다. 일본에서도 미술관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 구로카의 공생을 테마로 지어졌다.



‘생활 속의 미’ 산토리미술관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히비키’로 유명한 산토리는 1899년 창립 이후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의 ‘이익 삼분주의’를 경영 철학으로 삼아왔다. 사업으로 얻은 것은 재투자할 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사회 환원으로 나눠야 한다는 의미다. 2대 사장 사지 게이조는 일본 고도 성장기에 “마음의 풍요로움이 중요하다”며 문화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1961년 산토리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마루노우치에 문을 연 산토리미술관은 1975년 아카사카로, 2007년 3월 미드타운(롯폰기)으로 옮기며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기업 미술관이 보통 설립자 취향대로 작품을 수집·전시하는 것과 달리 산토리미술관은 처음부터 위원회를 만들어 ‘생활 속 미’라는 기본 이념에 맞는 컬렉션을 갖춰왔다. 소장품은 회화, 도자기, 칠공예 등 일본 고미술부터 동서양 유리 작품까지 3000점에 달한다. 국보 1점, 중요문화재 16점도 갖고 있다. 연간 6회가량 기획전을 개최하는데, 매년 방문객 약 30만 명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산토리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마의 목표는 ‘도시의 거실’ 같은 편안한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 간 융합을 기조로 도쿄라는 시끄러운 도시 속 조용한 거실이 되길 바라며 설계도를 그렸다. 외관은 백자 재질로 만든 세로 격자를 덮어 모던한 감각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뽐낸다. 실내는 나무와 일본 전통 종이를 사용해 자연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빛을 표현했다. 바닥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조회사답게 위스키를 숙성하는 오크통을 재활용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일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존재가 ‘일왕’이다. 일본에서 왕은 ‘통치하지 않는 인간 신’이다. 그런 그가 사는 곳이 도쿄 고쿄(황거)다. 일본 최초 국립미술관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그 고쿄 바로 옆에 있다.
1952년 개관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근현대 미술품을 수집하는 동시에 다양한 전시회를 열어 미술의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화, 판화, 수채, 소묘, 조각, 사진, 영상 등 1만4000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갖고 연 5회가량 전시마다 약 200점을 전시한다. 요로즈 데쓰고로의 ‘나체 미인’, 기시다 류세이의 ‘레이코 초상’, 고가 하루에의 ‘바다’, 아이 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좌측부터] 요로즈 데쓰고로의 '누드 미인' (1912), 기시다 류세이의 ‘레이코 초상’ (1921), 고가 하루에의 ‘바다’ (1929) / 그림. ©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MOMAT)](http://img.www5s.shop/photo/202505/01.40405137.1.jpg)

도쿄도현대미술관이 하루아침에 수천 점을 소장하게 된 것은 아니다. 소장품의 약 절반은 1926년 개관한 도쿄도미술관에서 가져왔다. 일본 동시대 미술 발표의 장이었던 도쿄도미술관은 전시회 등으로 형성한 약 3000점을 도쿄도현대미술관에 물려줬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