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정(Charlie Jung)의 <Sunshine Blue (선샤인 블루)> 앨범 / 사진출처. © NHN Bugs Corp.
찰리 정(Charlie Jung)의 <Sunshine Blue (선샤인 블루)> 앨범 / 사진출처. © NHN Bugs Corp.
‘홍대’라 하면 단순히 대학교만을 의미하는 명칭은 아니다. 이는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에 이르는 직사각형 모양의 지역을 의미하는데 또 다른 의미로는 문화지구로서의 존재감이다. 이곳에는 출판사, 독립서점, 레코드점, 공연장, 독립서점들이 고루 모여 있다. 여기에 개성 넘치는 카페가 골목마다 숨어 있어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방문객이라면 주목해야 할 장소가 바로 홍대 엘피바다.

1980년대에 엘피바라는 명칭은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음원이 아닌 음반의 시대였기에 카페에 가면 음반으로 배경음악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따로 엘피바를 찾아갈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오픈한 신촌 우드스탁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엘피바는 홍대지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음악공간이 됐다. 참고로 홍대에는 대략 30여개의 엘피바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홍대의 엘피바는 다음과 같다. 피카소 거리 지하에 처음으로 오픈했던 ‘블루스 하우스’, 음악동호회 선배가 운영했던 ‘소울 트레인’, 빌딩 4층에 입주했던 ‘애비 로드’, 지금은 음반회사를 운영하는 지인이 주인이었던 ‘버즈’, 재즈를 좋아하던 직장 동료가 2022년 개업한 ‘달빛소리’, 사이키 조명이 인상적이었던 ‘중독’, 고등학교 선배가 사장인 ‘코케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가꿔진 ‘크림’, 1980년대 팝 뮤직이 흘러나오는 ‘별밤’이 먼저 떠오른다.
엘피바 '별밤' / 사진. © 이봉호
엘피바 '별밤' / 사진. © 이봉호
이 외에도 가요 전문 엘피바 ‘곱창전골’, 붉은색 조명이 매력적인 ‘철스뮤직’, 고음질의 사운드가 특징인 ‘리플레이’, 멋진 야외 테이블을 구비한 ‘모토’, 연트럴 파크 초입에 위치한 ‘52nd Street’, 음악 시디가 가득했던 합정동 ‘소울 벙커’, 지금은 충무로 지역으로 이전한 ‘동감상련’, 주택가 3층에 자리잡은 아담한 규모의 ‘오즈’, 한국 영화배우들의 사랑방이었던 ‘섬’, 지금은 다른 엘피바가 입주한 망원동의 ‘학살롱’ 등이 필자가 방문했던 엘피바 목록이다.
엘피바 '모토' / 사진. © 이봉호
엘피바 '모토' / 사진. © 이봉호
그렇다면 엘피바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신청해서 감상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엘피바 주인의 취향에 따라 신청곡을 틀어 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주말 9시 이후에는 자신의 신청곡을 모두 감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가게를 오픈하는 시간에 엘피바를 방문하곤 한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이기에 주인 입장에서도 여유 있게 신청곡을 접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매력은 운영자의 음악 성향이다. 위에서 나열한 엘피바는 사장에 따라 선호하는 음악이 각자 다르다. 자신이 즐기는 장르가 분명히 존재하는 방문객처럼, 사장 역시 원하는 음악을 함께 감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기에 재즈나 블루스를 사랑하는 엘피바 주인에게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을 거푸 신청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 방문하는 엘피바에서 사장이 어떤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까지 알 수는 없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는 과정이 엘피바를 찾는 즐거움이다.

엘피바의 오픈 시간 역시 가게마다 차이가 있다. 오후 6시면 불이 들어오는 엘피바가 있는가 하면, 오후 7시가 넘어서도 문이 잠겨 있서 발길을 돌리거나 입구 근처를 배회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엘피바란 저녁을 곁들인 1차를 마치고 2차로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 이른 손님이 많지 않은 편이다. 아침형 인간에 속하는 필자는 밤 10시 이전에 엘피바를 나오는 편이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 입장하고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가게를 나오니 가성비가 좋은 손님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소개하는 기타리스트 찰리 정은 재즈나 블루스를 틀어주는 엘피바에서 감상하기 좋은 연주곡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실용 음악대학인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I)를 졸업한 연주자다. 이곳의 전신은 기타리스트 하워드 로버츠와 사업가 팻 힉스가 1977년 설립했던 더 기타 인스티튜트 테크놀로지(GIT)다. 본명이 정철원인 찰리 정에게는 기타리스트로서의 미래를 함께할 터전으로 MI를 선택한 셈이었다.
찰리 정의 연주 모습 / 사진=필자 제공
찰리 정의 연주 모습 / 사진=필자 제공
필자가 찰리 정의 연주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2015년이었다. EBS 음악 방송 채널 ‘공감’에 출연했던 찰리 정 밴드는 재즈와 블루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대를 선사했다. 이를 계기로 2022년 홍대 재즈 클럽 ‘에반스’에서 열렸던 찰리 정의 라이브를 직접 참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찰리 정의 신보 앨범을 구하려고 그의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취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신보는 인터넷 음반점에서 판매하지 않고 공연장에서만 판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재즈 기타리스트의 음반을 수집하지만 유독 찰리 정의 음반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정감 있는 사운드에 있다. 미국에서 10년이 넘는 음악 생활을 했지만, 찰리 정의 연주는 지극히 동양적인 감성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라이브 무대에서 아시아를 주 무대로 여행과 연주를 즐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2009년 ‘말레이시아 페낭 국제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했던 뮤지션이었다. 찰리 정은 스탠다드 재즈에서부터 퓨젼, 포크, 블루스 등 다채로운 장르의 연주를 추구한다.

그의 앨범 중에서 2014년에 발표했던 [Sunshine Blue]를 골라 보았다. 앨범 이미지를 살펴보면 일렉트릭 기타를 둘러맨 그의 뒷모습과 정면에 등장하는 버스가 묘한 대조를 보인다. 여기에 파랑 바탕의 톤이 앨범 타이틀인 [Sunshine Blue]와 혼연일체를 이룬다. 아쉽게도 이 앨범은 현재 음원으로만 접할 수 있다. 앨범 수록곡 중에서 엘피바에서 자주 신청하는 곡은 ‘상도 블루스’다. 이 곡을 감상하고도 한국적인 블루스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음악의 미래를 책임질 열정적인 기타리스트이니까.

이봉호 문화평론가

[♬ 상도 블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