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아버지(심 봉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해 심청이가 100% 만족했을까요? 아마 다른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심청의 내면을 둘로 분리해 표현했습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연출을 맡은 정구호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립정동극장에서 8일 개막한 전통연희극 '단심(單沈)'의 정구호 연출은 이번 공연의 콘셉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으로 선보이는 단심은 고전 설화로 잘 알려진 '심청전'을 현대적 연출을 가미한 한국무용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로 2023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현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정 연출가와 정혜진 안무가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정 연출의 설명대로 이날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선 심청의 내적 갈등이 두 무용수의 애절한 몸짓을 통해 구현됐다. 부서질 것처럼 가녀린 새하얀 옷의 심청이가 바닥에 엎드려 인당수에 빠질 준비를 하는 그때, 흑화한 듯 검은 옷을 입은 또 다른 심청이 그녀를 감싸 안고 만류하는 모습은 다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박지연 무용수는 흑화한 심청 역의 해석에 대해 "한평생 아버지 눈을 대신해 살아가야 하는 심청의 상황과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며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심청이 목숨 바치는 상황과 마음이 무섭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무용수들이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단심은 심청전의 기존 서사를 그대로 따르지만,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심청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도 다른 작품과의 차별점이다. 정 연출은 "지금까지 여러 버전의 심청 이야기를 본 결과, 심청이를 깊이 있게 조명한 작품은 없었다"며 "심청이는 항상 억누르고, 참고, 이해하는 모습만 나오기 때문에 1막에선 심청 1과 심청 2를 통해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무용수들이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배우 채시라가 데뷔 40년 만에 무용수로 변신해 용궁 여왕 역할을 맡았다./사진=연합뉴스
2막에선 심청이 빠진 바닷속 용궁이 정 연출의 감각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핑크빛 무대로 펼쳐진다. 무용수가 꿈이었던 배우 채시라가 용궁 여왕 역할을 맡았다. 기존 심청전에선 용왕이 나오지만, 단심에선 여왕을 등장시켜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심청이 모성애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데뷔 40년 만에 무용수로 변신한 채시라는 "드라마 '최승희'에서 춤을 췄지만, 오래전 작품이라 목이 마른 상태였다"며 "이번 무대에서 15분 가까이 퇴장하지 않고 오롯이 춤과 연기를 하게 돼서 꿈만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배우이다 보니 춤을 추며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춤과 연기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잘 어우러져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 3막으로 구성된 단심은 75분간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다. 공연은 국립정동극장에서 다음 달 28일까지. 전통 공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50회 장기공연이다. 오는 10월에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계 특별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