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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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30대 A씨는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 지역의 특색 있는 먹거리와 볼거리에 이야기를 입힌 ‘스토리텔링 원도심 투어’ 사업을 준비 중이다. A씨는 “KTX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지방 소도시에 대한 외국인과 젊은 층의 관심이 늘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해온 B씨는 고향인 강원 횡성으로 돌아가 영농법인을 세우고 카페도 열 계획이다. B씨는 “도시에서 자란 동료들이 ‘시골 감성’에 로망을 느끼는 걸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건물과 땅은 버려진 친척 집을 거저 얻다시피 했고 정부 지원도 일부 받았다”고 했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로컬 창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로컬 창업은 지역의 문화, 자원, 특성을 활용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을 말한다. 로컬 창업은 청년들에게 그 자체로 새로운 일자리인 동시에 지방 중소도시에는 인구 감소 위기를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살이보다 나아요"…직장 관둔 30대 돌연 시골로 간 이유

못난이 복숭아 양조장·빈집 활용 카페…


최예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지방 중소도시 청년 로컬 창업 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충북·경북 지역 로컬 창업자 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 응답)를 한 결과 창업에 나선 이유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44.7%로 가장 많았다.

‘더 나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40.0%)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36.5%)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35.3%)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워라밸과 주도적 삶을 위해 창업했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업성을 엿본 청년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창업 청년의 나이는 평균 31.5세였다. 창업 준비 기간은 평균 13.3개월로 응답자의 절반 가량(48.2%)이 ‘1년 미만’이라고 답했다.

창업 업종으로는 카페 등 음식점업이 41.2%로 가장 많았다. 식음료나 가구 등을 만드는 제조업이 27.1%, 관광 체험 및 숙박업이 24.7%, 도소매업(유통판매)은 17.6%였다.

‘어떤 지역 자원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역 농산물(로컬 푸드)을 활용한 사례가 응답자의 절반 이상(58.8%)으로 가장 많았다. 빈집 등 지역 내 유휴시설과 공간을 활용한 사례(23.5%)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상품 가치가 낮은 못난이 복숭아 등을 활용한 브루어리(양조) 창업, 방치된 빈집을 저렴하게 빌려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상당수였다. 지역의 랜드마크 명소(14.1%), 문화·역사(14.1%), 산림해양 등 자연경관(3.5%)을 활용한 투어 프로그램 창업도 적지 않았다.

한 개 업종만 전업으로 하는 로컬 창업자는 60%였고 두 개 이상의 업종을 영위하는 경우도 40%를 차지했다. 농업법인을 설립해 농장을 운영하고 그곳에서 키운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농업+도소매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 연구위원은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에 2차 산업인 제조업, 그리고 청년들의 선호를 반영한 음식점, 카페, 공간 임대업 등 3차 산업을 접목한 복합산업 형태가 다수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OO거리’ 하나 만들어주고 끝나선 안 돼


로컬 창업에 나선 청년을 일컫는 ‘로컬크리에이터’에 대한 정부 지원 사업도 인기를 끌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경쟁률은 2022년 12 대 1에서 2023년 18 대 1로 급등했다. 지난해에는 20.3 대 1을 기록했다. 지원사업 시작 이후 대상자로 선정된 창업자의 나이는 30대 이하가 절반 이상(59.6%)이었고, 출신 지역으로는 비수도권이 80%를 차지했다. 고단한 타향살이 끝에 고향으로 돌아간 ‘U턴 청년’ 비중이 높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연고가 없는 곳으로 이주하는 ‘I턴’ 청년의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석호 경남대 로컬크리에이터학과 교수는 “최근엔 지역 연고 야구팀과 손잡고 의류 및 소품 관련 창업을 하거나 지역 특산품인 함안 수박을 활용한 식빵을 판매하는 등 창의적인 기획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로컬 창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초기자금 확보 등 어려움도 적지 않다. 우선 창업자금 확보 등의 경제적 부분이 로컬 창업자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조사됐다. 보증금을 포함한 농지·부지·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비용, 기초 생활비 등 ‘초기자금 조달’이 절실하지만 신용과 담보 자산이 부족하다 보니 대출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2020년 지역 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에 지원한 예비 창업가 50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 매출 5000만원 미만인 로컬크리에이터 비중은 67%에 달했다.

최 연구위원은 “각종 지원사업이 예비 창업 또는 창업 초기 단계에 집중돼 있어 후속 지원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지역사회의 경계심 등으로 현지 주민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정부가 당장 지원 성과를 내려고 하거나 ‘OO거리’ ‘OO골목’ 하나 만들어주고 지원을 끝내서는 안 된다”며 “도전과 실패 사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성공 확률을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