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에서 공화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청정에너지 관련 각종 지원정책을 폐지하는 작업에 나섰다.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12일(현지시간)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제도(30D) 등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제 법안을 공개했다. 상업용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45W),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혜택을 받은 첨단제조세액공제(AMPC·45X) 등도 단계적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트럼프 감세안에 희생

공화당 하원의원이 추진하는 내용은 미국 세제 개편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산 조정 절차’를 활용해 주요 경제정책을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안’에 담아 의회에서 한 번에 통과시키기를 원한다. 일반적인 입법이나 기존 법안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상원 60% 찬성 등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반면 예산 조정 절차는 50%만 확보하면 상하원 통과가 가능해서다. 이 법안에 들어갈 세제 개편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감면 및 일자리창출법(TCJA), 팁 면세 등 각종 감세정책이 들어가는데, 의회를 통과하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를 늘리는 내용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 바이든 정부 대표 정책인 IRA는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였는데, 세금을 깎아주거나 크레디트를 지원하는 IRA는 공화당의 제거 대상 1순위로 꼽혀왔다.

이날 의원들이 공개한 세제 법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비자가 전기차를 살 때 7500달러를 지원하는 전기차 세액공제(30D)를 2026년 말까지만 운영하고 폐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원래는 2032년 말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6년 앞당겨졌다. 또 2009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에서 전기차 20만 대 이상을 판 회사에는 연말까지만 혜택을 주기로 했다.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현대자동차그룹 등 주요 전기차 회사는 당장 내년부터 7500달러 보조금 없이 차를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리스, 렌터카 등 상업용 전기차에는 세액공제를 받기 위한 원산지 요건을 완화해주는 제도(45W)도 당초 계획보다 7년 앞당겨 연말까지만 운영하겠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중국 견제’는 추가

저탄소 에너지 생산에 대한 세금 공제도 단계적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투자세액공제(48E)와 생산세액공제(45Y) 금액을 2029년에는 기존의 80%, 2030년에는 60%, 2031년에는 40%로 급격히 줄이고 2032년부터 폐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수소에너지 프로젝트, 전기차 충전소, 가정용 재생에너지 세금 공제도 사라질 예정이다.

배터리 회사의 투자를 유도한 핵심 정책인 AMPC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어들어 2032년부터 폐지된다. 원래는 2033년까지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이 급속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로비스트 회사 더리빙스톤그룹의 김용범 실장은 “공화당 의원 사이에서 이 제도의 혜택이 미국 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각종 혜택을 받는 기준을 더 까다롭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청정에너지 지원을 받는 조건에는 거의 모든 항목마다 ‘금지된 외국 단체’ 언급이 추가됐다. 중국산 원부자재를 많이 사용하거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최종안에선 변경될 가능성도

이날 공개된 세제 법안은 최종안이 아니다.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IRA로 투자를 유치한 지역 의원은 갑작스러운 투자 혜택 철회에 부정적이다. 지난 3월 공화당 하원의원 21명은 하원 세입위의 공화당 지도부에 IRA 청정에너지 지원책을 폐지하지 말라는 서한을 보냈다. 공화당은 현재 하원 435석 중 218석, 상원 100석 중 53석만 확보하고 있다. 일부라도 이탈하면 예산 조정 법안 전체가 통과되지 못할 수 있는 만큼 한 표의 힘이 크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