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사드라마의 고전인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의 에피소드 ‘Hero to zero’에서는 만화 속 다양하고 정의로운 슈퍼 히어로들로 직접 분해 현실에서 악인들을 처치해 가는 ‘현실에서의 슈퍼히어로 운동’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들과 관계된 살인사건을 다루는 수사관들은 누군가는 어린 시절 그 만화들을 보며 ‘덕후’로 성장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수학 공부와 과학 공부에 매진했을 뿐 만화로 대표되는 환상에는 아예 관심이 없던 수사관 역시 있다. 에피소드의 마지막에는 수학과 과학으로 점철되었던 유년 시절을 보낸 수사관에게 그의 상사가 자신이 어린 시절 읽던 영웅들이 담긴 만화책을 듬뿍 선물하며 환상에도 관심을 가져 보라는 취지의 말을 건네며 문을 닫는다.
1980년대의 꼬마에게는 환상이었던 파이프 오르간
생상스의 작품인 오르간 교향곡을 LP로 들어야만 했던 1980년대의 꼬마는, 바이올린을 독학으로 깨우쳐 연주를 들려주던 할아버지가 계셨고, 클래식 음악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사촌 누나도 있었으며, 1960년대에 구입한 스타인웨이 업라이트가 집안 마루에 놓인 외갓집과 그 피아노를 연주하던 외삼촌, 아버지의 취미 덕택에 다양한 브랜드가 블렌딩 된 오디오 세트로 층간소음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던 소소한 음악적 일상을 선물 받았다. 다만 그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웅장한 음들의 울림을 경험하게 된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내뿜는 환상의 소리는, 어떤 현실들이 쌓여 그런 환상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단 하나도 감 잡을 수 없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품 ‘토카타와 푸가 BWV.565’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인 토카타와 푸가의 도입부는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 같다. 그 쓰임새 역시 다양해서 진지한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되어도 어울리고,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장면과도 착착 달라붙으며, 한 음 한 음 긴 여운을 부여할 수 있는 그 독특함을 처음 경험하는 첫 작품으로도 손색없으며, 악기 하나의 음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묵직하고 크며 그래서 경건함에 더해 가끔은 경외감 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는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은빛을 내는 파이프는 자작나무 숲 같았고, 그 숲속으로 들어가는 노란 비밀의 문.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를 꺼내어 프랑스 사람들은 재밌게 들려주었다. / 사진. ⓒ이동조
클래식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일이 수월해진 시간이 오고, 음악회 공간이 아닌 영상물로 만나게 된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서 경험한 첫 충격은 연주자가 악기의 연주를 위해 자신의 사지(四肢)를 정교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손은 건반을 연주하는 일 외에도 다른 음색을 구현하기 위한 스톱(Stop)이란 기계적 장치를 운용하는 일을 추가로 해야 한다. 또한 각 발의 앞꿈치와 뒤꿈치,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의 역할마저 달리해 페달을 눌러 긴 파이프를 지배하는 두 발은, 이 악기로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구성임을 알게 되었다. 오르가니스트에게, “발 연주 너무 잘하세요”라는 말은 극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르간 연주에 적합한 오르간 힐 혹은 오르간 구두를 친한 오르가니스트에게 선물할 수 있는 청중이라면 ‘멋진 청중’이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예쁜 피아노처럼 보였던 파이프 오르간과 연계된 무대 위 오르간 콘솔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 제작사의 이름이 단촐하게 새겨진 측면과 오르가니스트의 연주용 힐 / 사진. ⓒ이동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즈음하여 한국인들에게 선물로 준 ‘여행 자유화’를 통해 그 당시의 청년들은 ‘배낭여행’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선진화된 문물들을 접하고, 그 기억을 소중히 배낭에 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을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이라면, 성당과 교회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던 파이프 오르간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파이프 오르간이 유럽 전역에 걸쳐 발에 채듯 자리하고 있는 현실은, 오디오 속에서 오랫동안 꿈꾸었던 환상 하나가 현실로 나타난 듯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그 청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수많은 음악 작품을 현실화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마에스트로 칼 리히터를 인상 깊이 기억하는 일 중 하나는 오르간 작품 파사칼리아와 푸가 BWV.582를 직접 연주하는 영상물이다. 빤짝빤짝 빛나는 구두가 그렇게 멋있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마치 절제된 춤을 추는 무희처럼 움직이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울 줄은 또 언제 상상이나 해봤을까. 영상으로 소개해 본다.
[ 칼 리히터 - 파사칼리아와 푸가 다단조 BWV.582 ]
생상스의 작품 교향곡 제3번 "오르간” - 선택과 집중 VS. Omnipresent
음악회 무대감독으로 일하며 종종 생상스의 작품인 오르간 교향곡 연주를 만나고는 한다.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지 않은 극장에서는, 소형 오르간처럼 생긴 보통 ‘콘솔’이라고 부르는 악기를 무대 위에 놓고 콘솔에서 오르가니스트가 연주를 진행하면 무대 뒤쪽에 일회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오르간 음악이 표현되고는 한다. 무대 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선택과 집중’이란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하다.
반면 극장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극장의 구조와 연동해 고안되고 설치되어지는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이미 공연장 전체의 공간이 자신이 표현하는 음들의 광장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상스의 작품인 오르간 교향곡을 객석에 앉아 감상하며 듣게 된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는 밀도의 다름인 것 같았다. 일회적으로 지향점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오르간 소리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라면, 광활한 음의 광장 어디든 균일한 밀도의 소리가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촘촘함. 다시 말해, ‘Omnipresent’. 파이프 오르간이 동반된 생상스의 교향곡 ‘오르간’의 라이브 공연을 찾아가는 매력은 거기에 있는 것임을 깨닫던 날이었다.
음악의 시간이 갖는 촘촘함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기억은 선뜻 듬성듬성한 기억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음악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일은 듬성듬성 흩어져 있던 기억을 감동적인 음악을 통해 촘촘하고 견고한 매듭으로 다시 묶어내는 일과 닮았다. 하물며 클래식 음악회 현장에서 감동적인 경험을 하는 일은 다시 말해 무엇 할까. 롯데콘서트홀을 부유하기 시작한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 속 파이프 오르간의 첫 음은, 오십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 만 원 지폐 한 장이면 네 장의 LP를 살 수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시간부터 네 행복한 기억을 차근차근 떠올리고, 맺으며, 예쁘고 아름다운 2025년 4월 29일 음악의 매듭 하나를 더 만들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다.
29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 사진. ⓒ김범준 기자P.S. 환상과 현실
음악회에 청중으로 참여할 연습에 함께한 음반 중 하나로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 공연이었던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르간 교향곡 음반 역시 있었다. 곧 듣게 될 파이프 오르간 소리의 음반적 체험을 목표했다고 할까. 음악회가 끝나고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정명훈 지휘자와 프랑스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5년 넘게,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는 15년에 가깝게 프랑스와 함께한 지휘자다. 유럽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보면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피렌체 테아트로 콤뮤날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도 있다.
정명훈 / 사진출처. 한경DB
음악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삼남매의 음악적 여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던 국내의 청중들은 정명훈 지휘자의 최근 소식에 다시 한번 큰 기쁨을 가졌을 것 같다. ‘사다리’라는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할 정명훈 지휘자. 19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시작한 정명훈 지휘자는, 1980년대 꼬마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길을 개척해 온 것 같다. 지난 세기 지휘의 세계를 풍미했던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같은 자리에, 또는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은 자리에, 정명훈 지휘자 본인 혹은 그의 후예가 차근차근 올라서서, 포디엄 위 바통을 들고 음악감독의 지위에서 그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는 환상 같은 현실을 마주하는 일 역시 그리 먼일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