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미 환율협상력, 금융안전망 강화에 달렸다
“정말이다. 위기가 오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경고다. “미국이 금융위기 초입에 들어선 느낌.”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진단이다. 허풍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폭탄 발언이다. 지난 12일 미·중 ‘90일간 관세 대폭 인하’ 합의로 관세전쟁은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위기 징후가 금융시장에 번지고 있다.

위기의 근원으로 두 사람은 미국 중앙은행(Fed) 독립성 훼손을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Fed 흔들기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Fed를 미 재무부 산하 기관으로 격하하는 ‘황당’ 시나리오도 버젓이 제기된다. ‘브레턴우즈’ 체제(2차 세계대전 종전~1970년대 초반)에서 달러 가치를 떠받친 건 금(金)이었다. 금이 하던 역할을 지금 Fed가 떠맡고 있다. 달러 안정의 핵심이 Fed 독립성인 거다. 독립성 짓밟기는 달러의 글로벌 신뢰를 뿌리째 뒤집는 행위다.

치솟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도 금융위기를 부추기는 방아쇠다. 14일 기준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4.54%다. ‘해방의 날’(지난 4월 3일) 3.36%보다 1.18%포인트 뛰며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가격 하락은 국채와 연계된 파생상품 담보 가치를 떨어뜨린다.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한 펀드가 속출하고 있다. 2022년 10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45일 총리’로 최단기 낙마했다. 그 사연도 시작은 국채 금리 급등이었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은 미국이 주도했다. 하지만 ‘위기 설거지’는 더 이상 트럼프의 관심거리가 아닌 듯하다. 미국의 IMF 탈퇴 가능성이 입방아에 오른다. 달러 ‘통화스와프’도 활용이 어려워 보인다. Fed에 상설통화스와프 라인을 갖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마저 달러 공급 중단 사태를 염려한다. 역내 은행들에 달러 부족 리스크에 대비하라고 독려 중이다. 글로벌 외환시장 안전망에 큰 구멍이 뚫렸음을 시사한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대외 안전망의 주축인 외환보유액이 감소 추세다. 특히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달러-원 간 맞교환)가 갈수록 늘 전망이다. 국민의 미래가 걸린 연금을 미국에 쏟아부은 부산물이 환율 상승이다. 뒤치다꺼리(환율 상승 억제)를 외환보유액이 도맡고 있다. 보유액이 줄어드는 이유다. 스티브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보고서도 경계 대상이다. 외환보유액 중 미 국채가 1258억달러다. 대부분 10년 만기다. 이를 ‘100년 만기’로 교체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유럽에서 중앙은행 간 ‘달러화 연대’ 제안이 나온다. 1865년 ‘라틴통화동맹’이 연상된다. 회원국 간 불신 증폭으로 1927년 붕괴됐다. 우리나라도 동남아시아 지역안전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 왠지 든든하다는 느낌과 거리가 멀다. 한은은 주요 9개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가동한 경험은 없다.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 제 코가 석 자다. 다른 나라가 달러를 빌려줄지 의문이다.

‘미국 우선주의’ 격랑에 IMF 등 국제금융기구 도움을 받는 위기 극복 방식은 힘을 잃었다. 두 가지를 고민할 때다. 우선 재정 건전성 강화다. 외환위기를 막는 최후 보루가 재정이다. 2008년 위기 시 1000억달러 금융회사 외채에 정부가 지급을 보증했다. 외환보유액도 부족한 시절 위기를 버텨낸 건 재정 덕분이다. 지금은 어떤가. 5년 연속 ‘재정준칙’(재정 적자 비율을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을 못 지키고 있다. 둘째, 미국 일변도 금융투자 행태도 재고가 필요하다. 작년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는 215억달러다. 국민연금 미 증시 투자 1057억달러(2024년 말), 서학개미 미 주식보유액이 1094억달러(5월 현재)다. 대미 주식 투자가 직접 투자의 10배다. 미국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달러 약세를 공언한다. 약세 통화국에 국민 재산을 몰빵(?)할 이유가 있나.

차기 정부는 미국과의 통상협상에 더해 환율협상을 앞두고 있다. 튼튼한 대외금융 안전망이 정부 교섭력 강화 전제 조건이다. 아쉬운 소리를 하면 협상력이 떨어질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