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망령'에 사로잡혀 투신...슈만이 집착했던 '유령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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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소현의 백조의 노래한 시대를 빛낸 작곡가들의 마지막을 기리는 ‘백조의 노래’, 그 세 번째로 만나볼 명곡은 독일 낭만 음악 시대를 밝혔던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평론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의 곡입니다. 그는 스승의 딸이었던 클라라 비크 슈만 (Clara Josephine Schumann, 1819-1896)과의 세기의 사랑, 그리고 문하생이었던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와의 삼각관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음악가입니다.
슈만이 남긴 피아노를 위한 백조의 노래
그가 수많은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한 데는 여러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요. 슈만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가졌었으며,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대를 포기하고 비크의 제자가 되는 선택을 했던 것, 또, 실력 향상을 위해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장치로 연습을 하다 오른손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이 좌절된 것이 그가 더욱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하는 데 매진한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무명 작곡가’와 자신의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 딸을 결혼시킬 수 없다는 비크의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클라라와 결혼하게 된 것도 큰 이유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854년 2월, 슈만은 여러 영혼에 둘러싸여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며 "그들이 놀라우면서도 끔찍하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계시를 주고 있다"는 말과 함께 하나의 피아노 변주곡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클라라 슈만이 남긴 일기에 따르면 슈만은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영혼이 그에게 불러준 주제를 쓰고, 그 주제를 토대로 클라라에게 감명을 주는 변주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령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자신 역시 유령이 되고자 결심한 듯 추운 겨울의 라인강에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반쯤 나체인 상태로 뛰어들어 사람들의 눈에 띄었기 때문일까요?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슈만은 집으로 돌아와 이 곡의 작곡을 이어갑니다. 슈만의 투신 직후 그를 진찰한 의사는 슈만에게서 클라라가 멀어져 있어야 할 것이란 진단을 내리고 클라라는 그날 바로 짐을 챙겨 집을 나갑니다. 그리고 슈만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란 생각조차 못 한 채 이 변주곡을 완성하여 아내에게 부치고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바로 베토벤의 고향이기도 한 도시 본에 위치한 엔데니히의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슈만은 의사의 권유대로 클라라와의 거리를 두며 점차 자신이 회복될 것이란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슈만은 쇠약해져 결국 2년 만에 만난 아내와 주변인들의 눈물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슈만의 백조의 노래는 그가 투신하면서까지 집착하였던 <유령 변주곡 (Geistervariationen/Ghostvariations in E flat Major, WoO.24)>이 되었던 것입니다.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하는 슈만의 <유령 변주곡>]
<유령 변주곡>은 슈만이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Leise, innig)’ 연주하라고 지시한 주제로 시작됩니다. 사실 그가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으로 보이는 천사의 영혼에게 받은 주제라 말한 이 곡의 주제는 한 해 전인 1853년, 요아힘에게 헌정한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Violin Concerto in d minor, WoO.23)’ 2악장 ‘느리게 (Langsam)’의 주제였다는 것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지는 선율들입니다. 이 잔잔한 주제가 끝나고 나면 다섯 개의 변주곡이 이어지는데요. ‘캐논처럼 (Canonisch)’ 강렬하게 연주하라는 제2변주곡과 ‘어느 정도 더 생동감 있게 (Etwas belebter)’ 연주하길 주문한 제3변주곡 등을 통해 우리는 한 천재의 고뇌와 고통과 희망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인 로베르트 슈만의 유작을 편곡하여 자신에게 선물한 브람스의 사랑을 율리 슈만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며, 아버지의 죽음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비난도 받았던 브람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슈만의 백조의 노래는 유령이 되어 그들 곁에서만 머문 것이 아닌, 영원히 우리의 곁에서 그들과 그의 음악을 기억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브람스가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3>]
박소현 작가•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