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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무대 위에 핀 광란의 아리아… 부산을 물들인 ‘루치아’의 절규

세아이운형문화재단과 문화재단1963의 네 번째 공동 제작 오페라
콘크리트와 철골로 지어진 폐공장에서 울려 퍼진 오페라 아리아
오페라 루치아 현장 /(c)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제공
철의 냄새가 스며든 콘크리트 벽 너머로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이 펼쳐졌다. 철골 구조물 사이로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자,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공간은 어느새 음악의 성지로 바뀌었다.

5월의 부산. 바람은 아직 서늘했지만, 무대 위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추위를 느낄 틈조차 없을 만큼 도니제티의 작품 속 선율은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기계가 멈춘 산업 공간 위에 인간의 목소리가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난 23일과 24일, 부산 수영구 F1963 키스와이어 센터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공간의 역사성과 예술의 힘이 만난 특별한 무대였다. 세아그룹의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사장 박의숙)과 고려제강 산하의 문화재단1963(이사장 위미라)이 공동 제작한 이번 공연은 두 철강기업의 메세나 행보가 낳은 결실이다.
고려제강기념관 야외공연장 (c) 고려제강 제공
고려제강기념관 야외공연장 (c) 고려제강 제공
공연이 열린 F1963은 본래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이었다. 1963년 가동을 시작한 이 공간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벨칸토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정략결혼과 가부장적 권력에 억눌린 여주인공이 사랑을 잃고 무너지는 자아와 광기를 그린다. 주인공 루치아와 에드가르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다.

이번 공연은 국내 주요 오페라단에 견줄 만한 제작 역량을 보여줬다. 특히 야외 음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4채널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과 무대 추적 기술을 도입, 성악가의 숨소리까지 관객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체온 유지를 위해 관객들에게 방한용 우비를 제공한 점도 세심한 배려였다.

윤상호 연출가는 루치아의 광기를 권력에 짓눌린 인간 내면과 시대의 억압 구조를 비추는 감정으로 풀어냈다. 콘크리트와 철골로 이루어진 야외 무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냉혹한 권력의 분위기와 루치아의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을 지휘한 데이비드 이는 각 장면의 전개마다 성악가들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템포를 조율하며, 비극적 장면의 음악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이끌었다. 특히 루치아가 플루트 선율에 맞춰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소프라노 이혜정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지휘하며 성악가를 배려했다.
정략결혼한 남편을 죽이고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는 루치아 역 소프라노 이혜정 / (c)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제공
타이틀 롤 루치아를 맡은 이혜정은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극도의 고음과 감정 기복을 요구하는 역할을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13분간 이어지는 ‘광란의 장면’에서는 감정선과 테크닉을 치밀하게 조화시켜, 가문의 번영을 위해 희생된 루치아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강인한 저항의 인물임을 표현했다.
루치아의 죽음에 절규하는 에드가르도 역 테너 손지훈 / (c)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제공
에드가르도 역의 테너 손지훈은 스포츠카의 엔진음을 연상케 하는 빠르고 시원한 발성으로 ‘Tombe degli avi miei(내 조상의 무덤 앞에서)’를 열창했다. 특히 테너의 아리아 중 탄탄한 발성과 정확한 음정, 긴 호흡이 필요한 것으로 악명 높은 카덴차의 마지막 고음(B 음정)을 정확한 피치로 불러내 객석의 환호를 끌어냈다. 20인조 노이오페라코러스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와 밀도 높은 합창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오페라 루치아 출연진 커튼콜 /(c)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제공
전석 무료로 진행된 공연은 3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진행됐다. 콘크리트와 철골이 드러난 독특한 건축미와 오페라 음악은 시·청각적으로 새로운 조화의 경험을 선사했다. 가족 단위로 공연장을 찾은 한 외국인 관객은 “한국 성악가들의 환상적인 기량과 야외 오페라 제작 수준에 깜짝 놀랐다”며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독특한 배경에서 경험한 이 오페라 공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페라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한 장르다. 그런 점에서 복합문화시설로 재탄생한 산업 유산 공간에서의 공연은 의미가 남다르다. 더욱이 소음, 날씨 등 외적 제약이 따르는 야외무대에서 의상, 분장, 조명, 음향 등 복합적인 요소가 필수적인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것은 두 문화재단의 오페라 생태계 확장을 위한 과감한 시도이다.

이해원 기자 umi@www5s.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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