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나면 배낭 메고 떠나던 직장인…도시 유목민 위한 베이스캠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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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철학 품은 캡처드서울
유목민으로 살아온 인류
현대 사회선 정착생활
정처없이 떠돌던 본능
'캡처드서울'서 만끽
백패킹 전용 텐트 등
캠핑 용품 전시하고
핸드드립 커피만 판매
드넓은 잔디밭에선
캠핑 체험행사도 열려
유목민으로 살아온 인류
현대 사회선 정착생활
정처없이 떠돌던 본능
'캡처드서울'서 만끽
백패킹 전용 텐트 등
캠핑 용품 전시하고
핸드드립 커피만 판매
드넓은 잔디밭에선
캠핑 체험행사도 열려

앤서니 새틴 영국 저널리스트는 저서 <노마드>에서 노마드에 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정주민이 서술한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새틴은 2008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케냐 유목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유전자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연구 대상이 된 케냐 유목민 중 ‘DRD4-7R’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은 오랜 유목 생활에도 체력과 영양 상태가 좋았다.
경기 파주 ‘캡처드서울’의 대표 김은준도 어쩌면 유목민 기질을 타고났을지 모른다. 그는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렸다. 백패킹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싶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백패커들은 딱 자신의 몸뚱어리를 누일 수 있는 크기의 가벼운 텐트와 침낭, 전기와 불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소량의 물과 먹거리만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른다.
백패킹은 어떤 자연도 누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노마드의 철학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이다. 캡처드서울은 숲속에서 보내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 만든 백패킹 용품 쇼룸이자 카페다. 김은준은 커피회사와 유통회사를 두루 거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량화에 집중한 캠핑 용품 브랜드를 선정해 유통망을 확보했다.
커피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핸드드립으로만 제공해 쇼룸 콘셉트에 어긋나지 않게 했다. 매장은 ‘서울에 사로잡힌’ 사람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파주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른 잔디밭에서는 종종 백패킹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캡처드서울 쇼룸은 흡사 ‘파빌리온’ 형태를 띤다. 파빌리온은 박람회 등지에 세워지는 임시 가설물이나 텐트다. 이 때문에 파빌리온은 노마드적 성격을 지녔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캡처드서울에는 전시 목적으로 세워진 백패킹 전용 텐트가 설치돼 있고, 그 옆으로는 목재로 만든 덱 위에 지어진 카페가 있다.
카페는 커피 제조 등을 하는 작은 콘크리트 건물과 캠핑 용품을 전시하거나 취음 공간이 되기도 하는 테라스로 나뉜다. 테라스는 얇은 목재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졌는데, 구조물 비중을 최소화하면서도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고민이 잘 녹아들었다. 필요한 재료만 알맞게 골라 욕심을 버리고 꾸린 이 공간은 모두 노마드가 머물 법한 파빌리온이 된다.
반영구적으로 버텨야 하는 일반 건축물과 달리 임시적 성격의 파빌리온은 건축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화려한 모습을 갖추기도 한다. 예컨대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있는 서펜타인갤러리에는 매번 건축가를 초빙해 만든 파빌리온이 설치돼 세간의 이목을 끌곤 한다. 하지만 유명한 건축가가 짓지 않아도 파빌리온은 도처에 있다. 그 모습은 너른 잔디밭에 펼쳐놓은 텐트가 되기도 하고, 방부목 기둥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쇼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유목민 유전자를 타고났을 수도 있다. 다만 세상이 필요 이상으로 풍요로워지고, 그 풍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정주민이 됐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춘 정주민의 삶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바쁘고 힘들다.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서로에게 더 욕심을 내라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목민은 넓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나와 한 몸이 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가질 줄 알았다. 풍요로운 삶은 상대적일 뿐이다.정주민이 점령한 서울을 벗어나 찾은 작은 파빌리온에서, 한 줌의 짐만 배낭에 넣고 떠나는 백패킹을 만났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소박한 취미를 엿보며, 노마드의 역사에 담긴 지혜를 마음에 한 움큼 담아본다.
글·사진=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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