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공장을 불법 점거해 생산 차질 등을 빚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노조의 불법 점거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이번 판결로 공장을 볼모로 한 노조의 쟁의행위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고법 민사6부는 지난 6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및 지회 노조원들에 대해 불법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낸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청구를 기각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2012년 8월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의장 라인 등을 멈춰 세웠다. 현대차는 “매출 감소와 고정비용 손실 등 손해를 봤다”며 노조에 5억3181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손해액의 60%인 3억2000여만원을 노조에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2023년 6월 “배상액을 재산정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부산고법은 “쟁의행위로 현대차가 팔려던 자동차를 팔지 못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고 생산 차질 물량은 그 뒤 회복됐다”는 이유로 노조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민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인 ‘입증 책임의 원칙’을 외면했다고 보고 있다. 부산고법이 “파업 후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 생산량을 만회했다”는 노조의 주장을 수용했지만, 노조는 생산 부족분 만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부산고법이 증거력이 있는 사실이나 물건을 증거로 삼아야 한다는 ‘채증 법칙’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판부는 “불법 점거 당시 계획보다 생산량이 1만2700대 줄었지만 연간 계획 생산량보다 3300대가 더 생산됐다”며 구체적 증거 없이 파업 이후 추가 생산이 있었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현대차는 계획 생산량은 미확정 단순 목표치로 시장 상황에 따라 매달 바뀔 수 있고 2012년 연간 목표 대비 1만6150대 적게 생산했다고 입증했다. 노조 측 증인도 “실제 운영계획은 계획 생산량 대비 수정된다”는 취지로 증언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자동차 생산 방식을 ‘주문생산’으로 간주해 일시적 생산 지연이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도 논란거리다. 주문을 받기 전에 수천 대의 재고를 확보하는 완성차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노조의 불법 변칙 쟁의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커졌다”고 했다.

김보형/곽용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