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
금융거래 적은 사회초년생·주부
택시호출·선물하기 내역 등으로
상환능력 평가 … '대출소외' 줄여
연체율 관리에도 긍정적 효과
중·저신용자 대출, 전체 32% 차지
연체율 0.5% … 지방은행보다 낮아
사회초년생 김모씨(30)는 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연봉 3500만원의 신입사원인 그는 입사 직후인 1년 전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받았다. 신용점수는 700점이었다. 김씨는 올해 초 1000만원가량 목돈이 필요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신용점수가 낮아 대출받기 어려웠다.
카카오뱅크는 금융 거래가 부족한 김씨의 신용을 다양한 일상 데이터를 활용해 평가했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책을 구입했고, 출퇴근 때 종종 카카오T 택시를 이용했다. 생일에는 친구들로부터 모바일 선물도 받았다. 카카오뱅크는 김씨가 상환 능력을 갖춘 고객이라고 판단해 1000만원 대출을 승인했다.
◇다중채무자도 대출 길 열려
금융회사와의 거래 실적이 아닌 도서 구입, 쇼핑, 온라인 활동 등 일상 데이터가 신용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대출금리와 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금융 취약계층의 ‘대출 소외’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신용점수를 활용하는 것보다 연체가 현저히 적은 것으로 나타나 시중은행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9일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중·저신용자의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점수인 카카오뱅크스코어를 통해 이 은행이 공급하는 대출액은 올해 누적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뱅크스코어는 카카오뱅크가 카카오톡, 롯데멤버스, 교보문고, 예스24 등과 협력해 만든 독자적 신용평가점수다. 카카오뱅크는 2022년 9월부터 자체 신용평가를 거쳐 중·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줬다. 지난해까지 공급한 대출액은 누적 8000억원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대출받을 때는 NICE평가정보, KCB 등 신용평가사가 개인의 금융거래 이력을 바탕으로 산정하는 신용점수가 주요 지표로 쓰인다. 점수가 높을수록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
비금융 데이터를 통한 신용평가는 기존 신용평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금융거래 기반 신용점수가 낮아 대출받기 어려운 사회초년생, 금융거래가 부족한 주부 등 금융 소외계층의 대출 가능성이 생길 뿐 아니라 금리와 한도에서도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30대 B씨는 미용실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대출 3건을 보유한 다중채무자라는 이유로 사업자 신용대출이 거절됐다. B씨는 카카오뱅크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를 통해 사업 역량이 뛰어난 사업자로 선별돼 사업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자체 신용평가를 적용해 공급한 중·저신용 대출 가운데 15%는 기존 신용평가에선 거절 대상이었다”며 “비금융 대안 정보로 이뤄진 신용평가로 우량 고객으로 분류돼 대출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연체율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카카오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은 전체 신용대출의 32.4%에 달하지만, 연체율은 0.52%다. 이는 iM뱅크, 부산은행 등 지방은행 연체율(각 0.62%)과 비교해도 양호한 수준이다.
◇허가제 고수하는 한국
비금융 데이터가 신용평가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개정법은 특정 개인을 식별하기 어려운 가명 정보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금융 분야 빅데이터 분석에 이용 가능하도록 했다. 카카오뱅크, 네이버페이 등 정보기술(IT) 기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핀테크 기업이 기존에 확보한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대안 신용평가점수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데이터 관련 규제가 풀리며 신용평가도 진화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0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인수된 캐비지는 페이스북, X 등 SNS 정보와 쇼핑 기록을 통해 소상공인의 신용을 평가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방식의 평가는 아직 막혀 있다.
신용평가 시장의 진입 장벽도 여전히 높다. 2020년 개인신용평가업의 겸업이 가능해지면서 카드사 등도 신용평가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달리 신용평가업이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용평가 시장 내 경쟁이 자유롭지 못하고 혁신이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