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은 그의 마지막 곡이자 미완성 작품입니다. 자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직감한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을 완성할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지막 4악장의 경우 작곡가가 상당한 분량을 작곡하고도 전체 악장을 완성하지는 못했는데(아래 참조), 여러 사람들이 그가 남긴 미완성의 악보 등을 토대로 해 4악장을 다양한 형태로 완성해 연주하기도 합니다.

[교향곡 9번 D단조 WAB 109, 피날레(미완성)]

[교향곡 9번 D단조 WAB 109, 피날레(완성)]
브루크너가 남긴 4악장의 미완성 악보는 (아마도 마지막에 이르러 마음이 조급했는지 아니면 창작 영감이 무디어지거나 약해졌는지 몰라도) 3악장과 잘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습니다. 미완성 악보를 토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마무리를 시도한 4악장의 완성본들 또한 그 어느 것도 작곡가가 직접 완성한 이전의 악장들에 비해 뭔가 음악적으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의 청중들이나 지휘자들이 브루크너가 생전에 완성한 세 개의 악장만으로 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현재도 대부분의 무대에서 작곡가가 생전에 완성한 세 개의 악장만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교향곡은 완성된 세 악장만으로도 연주 시간 한 시간을 넘길 정도로 장대한 데다가 직관적으로 귀에 꽂히는 선율들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9번 교향곡은 클래식 초심자들에게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이 작품에 담긴 정서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브루크너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하며 감상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이 교향곡은 작곡가가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 예감하고 쓴 곡이라는 점 때문인지 몰라도, 이 교향곡의 1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마치 그의 8번 교향곡의 1악장과 같은 '죽음의 선언'이 담긴 것처럼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2악장을 죽음의 춤으로 파악하며, 마지막 3악장의 아다지오 역시 죽음과 소멸을 노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브루크너가 교향곡 9번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교향곡이 그의 다른 교향곡과는 달리 애당초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에게(an dem lieben Gott)" 바치는 곡으로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래에서 악장별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말러가 "장엄하고 신비하게" 연주하라고 한 1악장은 전능한 하나님의 위엄과 그 아래 초라하고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인간의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위 '죽음의 선언'을 주축으로 한 8번의 1악장과는 전혀 다른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9번 1악장의 음악적 정서는 8번 1악장보다 (9번 3악장의 도입부와 코다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7번 1악장의 장엄함에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2악장의 스케르초를 흔히 죽음의 춤으로 설명하고, 중간의 트리오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의 세계와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교향곡이 하나님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광포한 느낌의 스케르초의 주부나 이 땅이 아닌 하늘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트리오 등은 준엄한 디에스 이레의 심판주인 하나님과 영적 세계에 관계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지막 3악장 또한 사람들이 말러의 9번 교향곡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죽음 또는 이생과의 작별을 노래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말러 교향곡 9번의 종악장이 결코 죽음을 묘사한 것이 아님은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의 3악장 아다지오 또한 결코 죽음이나 소멸을 노래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브루크너가 자기 죄의 고통과 십자가의 대속, 그리고 참회를 통한 속죄의 은총을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는 만프레드 호넥의 연주를 중심으로 하여 각 악장별로 그 구체적인 내용과 감상 포인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악장>

[Symphony No. 9 in D Minor, WAB 109 (Ed. L. Nowak) : I. Feierlich, misterioso]

1악장은 크게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음악적 소재가 제시되고 발전과 함께 재현된 후 코다로 진입하는 구조입니다. 특히 발전부와 재현부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소나타 양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곡의 구조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래와 같은 음악적 소재의 특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시부

I - 제1소재

브루크너 교향곡이 대체로 그렇지만, 1악장은 원시의 안개라는 별명을 가진 현악기의 잔잔한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으뜸화음을 펼친 후, 서서히 핵심 주제를 부상시키는 그의 특유 방식이 그대로 사용됩니다. 이는 아시다시피 베토벤 9번 1악장 도입부를 모방한 것인데, 특히 이 9번의 1악장 조성 또한 베토벤의 9번과 동일한 D단조입니다.

지휘자 호넥은 1악장의 도입부에서 점진적으로 주제를 제시해가는 과정을 죽음의 행진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나 싱코페이션 리듬에 의해 점층적으로 발전하는 도입부 하행 음형의 파편들을 죽음과 관련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D단조의 파편들은 곧바로 하늘 위로 높이 상승하며 웅혼한 모습을 드러내며, 그 후 조심스럽게 무릎 꿇고 경배하는 듯한 음형이 제시됩니다. 그다음 점차적으로 끓어 올라 아래와 같은 핵심 주제가 1악장의 무대를 장악하는데, 이 핵심 주제는 끝에서 D장조로 당당히 마무리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이러한 점들에 미루어볼 때, 1악장의 도입부를 죽음의 행진으로 파악하면서 1악장 전반의 주된 정서가 '죽음의 선언'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도입부는 흑암과 혼돈 속에서 점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Teodor Currentzis | Bruckner: Sinfonie Nr. 9 | SWR Symphonieorchester]

II - 제2소재

제1소재의 제시에 이어지는 아래 제2소재는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그 속에 하나님의 자애로움에 대한 간절한 내면의(Innig) 갈망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III - 제3소재

제2소재에 이어 뮤트된 호른이 억눌려진 신음과 같은 소리를 내뱉은 후, 아래와 같이 제3소재가 이어집니다. 이 제3소재는 그 뿌리를 제2소재에 두면서 좀 더 움직임이 더해지고 변화된 형태를 가집니다. 이를 통해, 호소와 간구는 더 간절해지는데, 이때 장엄한 제1소재가 아래로 깔리면서 둘 간의 대화는 점점 빌드업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발전부 및 재현부

제시부가 마무리되면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플루트 등이 이어집니다. 분위기가 전화되어 곡은 발전부로 접어드는데, 제1소재가 장엄하게 다시 부상합니다. 그 후 제2소재와 제1소재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재현부의 시작처럼) 제1소재가 요동을 치며 클라이맥스로 치고 오릅니다.

그 후 다시 뮤트된 호른이 억눌려진 신음과 같은 소리를 내뱉자 제1소재는 다시 빌드업되면서 클라이맥스에 올라 끝에서는 마치 모든 혼란을 진정시키듯 마무리됩니다.

그리고는 분위기는 차분히 아래로 가라앉는데, 제2소제가 다시 등장하고 곧이어 제3소재 역시 뒤를 따릅니다. 그 후 제3소재는 다시 빌드업되며, 최고조에 이른 다음 정리되고(21:48) 이어지는 마지막 흐느낌과 호소에 이어 곡은 코다로 진입합니다.

코다

코다는 팀파니의 잔잔한 울림과 함께 제1소재의 일부 하행하는 음형이 서서히 반복되면서 시작하여, 금관이 포효하면서 제1소재가 브루크너 특유의 장쾌한 울림으로 마무리되며 1악장은 끝납니다.

코다에서의 하행음형이나 트럼펫의 울림 등은 8번 교향곡의 1악장의 '죽음의 선언'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고, 그로 인해 지휘자 호넥은 이 코다를 장례음악으로 규정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이 마지막 코다에 담긴 정서는 죽음이나 장례음악이 아니며, 브루크너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제1소재의 핵심, 즉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전능한 위엄이 아닐까 싶습니다.

<2악장>


[Symphony No. 9 in D Minor, WAB 109 (Ed. L. Nowak) : II. Scherzo. Bewegt, lebhaft]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 2악장은 스케르초 주부 - 트리오 - 주부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오스트리아의 민속 춤곡 등에 기반한 그의 다른 교향곡 스케르초 악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트리오의 경우는 브루크너가 처음 작곡한 두 가지 버전을 버리고, 다시 세 번째로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부

2악장을 감싸고 있는 스케르초 주부는 음산한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울림으로 시작하여 피치카토에 의한 난잡한 현악의 울림 후, 아래와 같이 반복적으로 울리는 4분음표의 짓밟는 듯한 리듬과 함께 하행 후 상행하는 스카카토의 음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이를 죽음의 춤이라고들 하는데, 물론 매우 현대적인 화성과 함께 악마적인 요소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교향곡이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광포한 느낌의 스케르토의 주부에서는 (1악장의 창조주의 위엄과 또 다른) 준엄한 심판주인 하나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스케르초의 주부를 들을 때는 아래와 같이 심판의 하나님을 노래하는 헨델의 딕시트 도미누스의 한 장면이 늘 머리에 떠오릅니다.

[Le Temps Suspendu - 6 Août 2017 - G.F. Haendel : Dixit Dominus "Conquassabit"]

위와 같은 광포한 음악이 흐른 후, 순간 뭔가 진압이 된 듯 조용해지지만, 갑자기 다시 집요한 4분음표에 의해 짓밟는 듯한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트리오

그 후 이 주부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분위기의 트리오가 이어지는데, 이 역시 집요하게 반복되는 리듬으로 아래 악보처럼 위로 날아다니는 듯한 신비롭고 기이한 움직임이 특징적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이 트리오를 흔히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을 묘사한 멘델스존 음악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트리오는 주부에 비해 훨씬 가볍고, 땅이 아닌 하늘을 나는 그 무엇을 묘사하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요정이라기보다는 하늘의 신비로운 영적 존재인 천사들과 모종의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이한 점은 이 트리오에는 약간의 호소와 위로마저 담긴 듯한 선율이 뒤따른다는 점인데, 트리오 부분은 이렇게 다른 성격의 소재가 계속 번갈아 반복되며 진행됩니다.

트리오가 마무리되면, 곧 다시 광포한 느낌의 스케르초 주부가 처음처럼 반복되며 2악장은 마무리가 됩니다.

<3악장>

[Symphony No. 9 in D Minor, WAB 109 (Ed. L. Nowak) : III. Adagio. Langsam, feierlich]

드디어 브루크너가 완성작으로 남긴 마지막 악장인 3악장 아다지오입니다. 이 악장을 이해하려면 그 기저에 깔려있는 몇 가지의 음악적 소재들과 그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부

I - 제1소재

아다지오 악장의 첫 도입부는 아래와 같이 먼저 위로 높게 9도로 도약한 후, 반음계로 내려오는 음형으로 시작합니다. 후배 말러가 따라 했는지 몰라도 말러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분위기와 흡사한 이 음형은 갈망과 함께 불확실성과 죄로 인한 불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7번 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의 E장조에 의한 상행 음형을 닮은 노래가 뒤따르면서 우러러보는 시선의 종착점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임을 확인하는 듯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그 후 고뇌하는 듯한 저음현의 여린 울림을 배경으로 상승 후 하강하는 탄식과 동경의 모티브들이 점점 끓어오르더니, 곧 브루크너가 이전의 작품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던 고통스러운 불협화음이 관악 파트에 의해 뿜어져 나옵니다. 여기서는 마치 십자가에 못을 박는 듯한 세개의 32분음을 날카롭게 연주하는 트럼펫과 함께 금관이 고통의 신음을 절규와도 같이 7번에 걸쳐 쏟아냅니다.

이러한 신음이 메아리처럼 점점 잦아들면서 (브루크너가 삶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 하였다는) 아래와 같은 하행 음형의 코랄이 바그너 튜바 등 금관에 의해 울리며 애처로운 마음이 노래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II - 제2소재

위에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다양한 세부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제1소재가 노래된 후, 마치 응답하듯이 아래와 같은 제2소재가 제시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이 소재는 브루크너의 d단조 미사의 miserere 음형에서 차용된 이 주제는 큰 파장으로 움직이며, 흔들리는 저음현을 배경으로 신을 향한 참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참회에 대한 용서는 3악장의 마지막 코다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집니다.

참회의 동기가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아래로 깔리며, 신음하는 바그너 튜바의 울림 위로 플루트 솔로가 c장조로 마치 성당안에 비치는 한 조각의 빛과 같이 울리면서 신의 응답을 미리 살짝 예고합니다.

2부

I - 제1소재

그 후 다시 곡은 처음으로 돌아가면서 2부가 전개됩니다. 우선 제1소재가 다시 등장하여 죄로 인한 불안을 머금고 다시 천상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플루트의 울림이 등장하자 죄의 탄식과 위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는 동경의 마음이 더욱 강하고 커져만 갑니다.

다시 탄식과 동경의 마음이 끓어오르자 1부에 나왔던 십자가의 고통과 신음이 다시 반복됩니다.

II - 제2소재

그 후 고통의 신음이 잔향처럼 사그러들자 이번에는 바로 제2소재가 이어지는데, 1부의 경우와는 다르게 변형된 형태이고 분위기도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회의 노래가 고조되다가 갑자기 뚝 끊어지자 오보에가 강하게(f) 하행하는 한탄의 음형을 짧게 노래하면서, 다시 탄식의 분위기로 돌아가며 트롬본까지 그 분위기에 가세합니다. 그 후, 마치 천상의 소리와 같은 플루트가 이를 받으면서 급기야 매우 신비로운 화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3부

이러한 사건 이후 특별한 순간이 등장하는데,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마치 불안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묘사하듯) 8분음을 지속적으로 평탄하게 반복하기 시작합니다. 호넥은 이를 가톨릭 미사에서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Mea maxima culpa"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특별한 순간이 있은 후, 다시 한번 제2소재(참회의 주제)가 노래됩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제1소재(탄식)와 결합되면서 급기야 엄청난 고통과 신음으로 표출되는데, 마지막의 아래와 같은 불협화음 코드는 마치 브루크너의 죄악으로 인한 고통이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결합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양, 브루크너 교향곡 9번
큰 침묵이 흐른 후, 다시 제1소재의 불안과 위를 향한 탄식이 등장하는데, 시선은 더욱 위를 향해 끓어오르지만 (이번에는 십자가의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하늘로부터 어떤 응답의 조짐이 보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결국 속죄함의 은총이 3악장 처음에 등장하였던 E장조에 의해 참회의 동기(제2소재)에 대한 응답과도 같이 아래로 내려오고, 한 줄기의 빛처럼 플루트가 위로 흐릅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천국의 기쁨과도 같은 호른이 긴 호흡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현의 여린 피치카토가 마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이루었다는 듯 세 번 고요히 울리면서 그렇게 3악장은 마무리됩니다.

신에 대한 가장 높은 경배는 자신을 그 앞에서 가장 낮추는 겸손과 참회라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브루크너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3악장을 통해 브루크너의 가장 숭고한 찬양과 경배를 받았다고 생각하였는지 하나님은 그 4악장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브루크너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갔습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Bruckner - Symphony No 9 - Celibidache]

[Bruckner: 9. Sinfonie · hr-Sinfonieorchester · Stanisław Skrowaczewski]

[Bruckner - Symphony No.9 , Giulini Wiener]

[Anton Bruckner: Sinfonie Nr. 9 | Manfred Honeck | NDR Elbphilharmonie Orche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