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우리 정부에 美 상대할 기술 전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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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엔 에너지 신소재
북극엔 암 정복 실마리
트럼프의 그린란드 야욕은
과학적 군사적 가치 때문
이 시대 기술 외교 중책은
당대 최고 전문가에 맡겨야
이해성 테크&사이언스부 차장
북극엔 암 정복 실마리
트럼프의 그린란드 야욕은
과학적 군사적 가치 때문
이 시대 기술 외교 중책은
당대 최고 전문가에 맡겨야
이해성 테크&사이언스부 차장
![[토요칼럼] 우리 정부에 美 상대할 기술 전문가 있나](http://img.www5s.shop/photo/202503/07.34201788.1.jpg)
자주범의귀는 빙하가 녹은 척박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두려움을 모르는 ‘개척자 식물’로 불린다. 이 식물에서 특이한 텔로미어가 발견됐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노화 속도를 결정하는 염색체 말단 부위다. 암 정복의 실마리도 텔로미어에 숨어 있다. 북극 주민들에게 비타민C 공급원 역할을 하는 그린란드고추냉이는 염기쌍이 2억5000만 개로 밝혀졌다. 사람은 30억 개다.
![[토요칼럼] 우리 정부에 美 상대할 기술 전문가 있나](http://img.www5s.shop/photo/202503/AA.39973798.1.jpg)
미국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막대한 고부가가치 광물 자원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물론 철, 납, 아연부터 백금, 니켈, 우라늄, 나이오븀, 바나듐, 탄탈룸까지 다양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나 북한이 미국 본토로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때 레이더로 가장 먼저 포착해 요격할 수 있는 곳이 그린란드다. 과학적 가치가 높은 생물 자원과 경제적 가치가 높은 광물이 풍부한 군사적 요충지, 누구나 탐낼 만한 곳이다.
트럼프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계산된 이득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과격한 협상가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대만 TSMC, 한국 현대자동차로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 자동차 분야에서 수백억~수천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투자를 연달아 이끌어낸 것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전에 새로 실을 만한 트럼프식 외교 통상법이다.
전통적 외교의 화법에 대한 서양의 격언은 이랬다. 예스(Yes)의 속내는 메이비(maybe·아마도)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기 위해 의도적으로 취하는 전략적 모호함을 상징한다. 메이비는 노(No)의 완곡한 표현이다. 만약 노라고 했다면? 그는 더 이상 외교관이 아니다(No more diplomat). 협상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런 고전적 외교의 룰을 바꾸고 있다. 예스는 예스고, 노는 노다.
첨단 기술 외교도 이와 비슷하다. 전략적 모호함보다는 기술에 깊은 조예를 갖춘 전문가들 사이에 솔직하고 오랜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국가 간 AI 협상을 할 때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동아줄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권위자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기술 문외한’인 외교관 10명, 100명보다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와 우주 관련 기술 외교는 기본적으로 국가 안보와 맞닿아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문외한 외교관들이 가서 수습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최근 미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 및 기타국(SCL) 하위 리스트로 지정 예고한 것은 일부 매체와 정치권 탓에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한 측면이 있다. 24일 이 문제를 두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는 그런 점에서 위험천만했다. 국익을 해칠 수도 있는 민감한 기술 외교 정보가 여과 없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회의에 앞서 비공개를 제안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탄두 수십 개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으로선 핵 관련 이슈는 특별히 호들갑을 떨 만한 변수가 아니다. 국가 지도자가 매일 당면한 문제이자 상수다. 한국이 1981~1994년에도 SCL 지정국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DOE를 상대로 기술 외교를 전담할 전문가가 한국 정부 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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