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올리브영N 성수’(왼쪽)와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올리브영과 무신사는 외국인들의 K쇼핑 필수 코스가 됐다.  임형택 기자
21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올리브영N 성수’(왼쪽)와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올리브영과 무신사는 외국인들의 K쇼핑 필수 코스가 됐다. 임형택 기자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올다무) 신흥 유통기업 3사의 추정 기업가치가 15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유통 빅3인 롯데, 신세계, 현대 시가총액 합산액의 두 배에 이른다. ‘신흥 유통 트로이카’가 독보적인 상품 기획력과 불황을 뚫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유통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다무의 추정 기업가치 합산액은 약 15조2000억원이다. 이날 기준 롯데쇼핑,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4개 유통사 시총 합산액(7조6113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B급 상권 이긴 상품기획력…'올다무' 폭풍성장 이끌었다
올리브영은 증권가에서 6조원대 몸값을 인정받고 있다. 비상장 주식시장에서 추정된 무신사 시총은 약 3조2000억원이다. 다이소는 정확한 기업가치가 추산된 적이 없다. 다만 일본에서 비슷한 균일가 잡화점 스리코인스를 운영하는 팰그룹홀딩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0배 안팎임을 고려해 지난해 당기순이익(3094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다이소 기업가치는 6조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통업의 본질이 부동산이었다면 지금은 콘텐츠”라며 “상품 기획력이 소비자를 유인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분석했다.

몸값 15兆…'유통 빅3' 두 배
특화된 콘텐츠로 고객 끌어모아…오프라인 매장 2년새 227개 늘어

과거 유통산업의 본질은 부동산이었다.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내면 장사가 됐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시장 환경이 바뀌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클릭 한 번으로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e커머스가 발달하면서다. S급 상권을 거머쥔 대형마트는 e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점포를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점포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신흥 유통 강자들이 있다.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다. 이들의 질주를 주도한 핵심 경쟁력은 입지가 아니다. 상품 기획력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B급 입지여도 상품과 콘텐츠를 찾아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것이 올다무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분석했다.

◇ 불황 뚫은 유통 강자, 뒤엔 상품 기획력

B급 상권 이긴 상품기획력…'올다무' 폭풍성장 이끌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 수는 작년 기준 합산 2969개다. 2022년에 비해 점포가 227개 늘었다. 이 기간 올리브영 매장이 73개, 다이소가 134개, 무신사가 20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가 136개에서 133개로, 홈플러스는 133개에서 127개로 점포를 줄인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올다무의 성장 뒤에 상품기획자(MD)의 상품 기획력이 있다고 봤다. 올리브영은 2010년대 들어 인디 브랜드 육성에 나섰다. 뛰어난 MD를 기용해 중소기업과 제품 연구개발 단계부터 협업해 히트 상품을 연달아 탄생시켰다.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도 MD 출신일 정도로 MD 경쟁력을 중시한다. 올리브영 입점 브랜드 중 연매출 100억원을 넘어선 브랜드는 2020년 36곳에서 작년 100개로 늘었다. 전체 상품 중 올리브영과 중소 업체가 공동 기획한 상품 비중은 20%에 달한다.

다이소는 5000원을 넘기지 않는 균일가 전략을 화장품, 의류, 식품으로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VT코스메틱의 리들샷은 일반 제품이 2만~3만원대지만 다이소용 제품은 3000원이다. 다이소 MD가 가격에 맞춰 제품을 재설계한 결과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차별화 전략은 ‘단독 판매’다. 개성을 중시하는 젠지 세대를 겨냥해 주요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을 단독 판매하는 ‘무신사 에디션’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2월부터 현재까지 900개 넘는 단독 상품이 발매됐다. 무신사에 단독으로 입점한 상품 브랜드도 2019년 58개에서 올해 기준 194개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 美·日서도 MD가 핵심 경쟁력

미국 일본 등에서도 e커머스의 부상 속에 상품, 콘텐츠 기획력이 오프라인 유통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할인형 점포 TJ맥스 등을 운영하는 미국 TJX가 대표적이다. TJX는 유명 브랜드의 시즌 종료, 반품 상품을 싸게 매입해 정가 대비 30~80% 할인 판매한다.

TJX의 작년 매출은 564억달러로 미국 소비심리 위축에도 전년 대비 3.95% 늘었다. 10년 전인 2014년(295억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대표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의 연매출이 281억달러에서 223억달러로 쪼그라든 점을 고려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일본에선 돈키호테가 경기 불황에도 성장하고 있다. 돈키호테 운영사인 PPIH의 2024회계연도(2023년 7월~2024년 6월) 매출은 2조951억엔으로 전년 대비 8.2% 늘었다. 2014년(6124억엔)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돈키호테는 폐점이 예정된 점포의 매장과 집기, 상품까지 한꺼번에 매입해 초저가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불황기에 점포를 늘렸다. 유통가 상식에 어긋나는 복잡한 상품 진열, 점포마다 다른 가격 방침 등으로 ‘탐험형 쇼핑’ 경험을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배태웅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