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승용차들의 요란한 경적부터 거친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까지…. 교통 체증과 소음으로 가득한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 푸른색 모자를 눌러쓴 그는 끊임없이 달리고,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구른다. 음식 배달원인 그에게 허투루 쓰는 시간이란 없다. 매일 노숙자 보호소 신청을 위해 새벽 알람을 맞춰 일어나고, 선 채로 컵에 담긴 음식이나 커피를 삼켜 허기를 채우며, 차에 부딪혀 쓰러져도 금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적지까지 뛰어간다. 그렇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주일간 종일 일해도 그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고작 40~80유로가 전부다. 그의 신분이 경제 활동이 제한된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라서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1999년생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이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한 면접을 이틀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아트나인, 영화의전당 공동 주최로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2025 프랑스영화주간’의 상영작 중 하나다. 국내엔 아직 미개봉된 작품이지만, 유럽에선 이미 높은 작품성으로 입소문을 탄 영화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올해는 ‘프랑스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이 영화에선 프랑스 파리에 으레 기대할 만한 화려한 도시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청년만 존재할 뿐이다. 그는 일하기 위해 합법적 거주권을 가진 타인의 계정을 빌리는 값으로 일주일에 120유로씩 뜯기고, 본인 인증을 요청하는 앱의 알람에 허겁지겁 계정 주인을 찾아다니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돈을 주지 않는 계정 주인을 찾아가 구타당하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충분히 울음을 터뜨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제한 시간 안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난민 신청자 면접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보리스 로즈킨 감독은 한 인물을 생동감 있게 다뤄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94분 내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몰입도 높은 연출로 누구나 현실에서 한 번쯤 보고 지나쳤을 각자의 술레이만을 떠올리게 만든다. 음악이 단 1초도 담기지 않은 영화란 점도 인상적이다. 오로지 숨가쁘게 달리는 술레이만의 발소리와 숨소리, 도심의 잡음만이 영화 전반을 채운다. 그들에게 삶의 낭만은 아예 없고, 팍팍한 현실만 존재한다는 걸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 음식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한프랑스대사관·아트나인 제공
후반부에 등장하는 술레이만의 난민 신청자 면접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프랑스 당국의 엄격한 난민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브로커로부터 받은 ‘합격 시나리오’를 줄줄 읊는 그를 보고 심사관이 “정말 당신이 겪은 얘기를 해달라”고 추궁하는 순간엔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낸다. 온몸을 덜덜 떨 만큼 심한 내적 갈등을 겪던 그가 마침내 들려준 진짜 이야기는 꾸며낸 에피소드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다. 대의를 위한 정치적 행위나 감옥에서의 가혹 행위 같은 대단한 서사는 없어도, 오로지 가족의 ‘안전’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온 그의 시간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파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 했던 술레이만이 처음으로 진실을 말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상징적이게도 그의 얼굴엔 처음으로 햇빛이 비친다. 그러나 뚜렷한 결말을 보여주진 않는다. 로즈킨 감독은 그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어렵고도 까다로운 질문을 던질 뿐이다. “술레이만이 프랑스에 머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추방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결국 그 결정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단 또 다른 표현처럼 말이다.

김수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