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연자실 > 미국발 상호관세 충격으로 코스피지수가 7일 5% 넘게 급락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범준 기자
< 망연자실 > 미국발 상호관세 충격으로 코스피지수가 7일 5% 넘게 급락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범준 기자
국내 증시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의 7일 폭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칼날’이 글로벌 경기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공포가 야기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 관세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낮추기 전까지는 증시가 회복 탄력을 얻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R의 공포’에 주저앉은 증시

이날 국내 증시에서 업종과 종목별 등락 구분은 무의미했다.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은 경기방어주로 분류되는 한국전력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멸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92%(866개)가 하락했다. 일부 정치 테마주에만 수급이 쏠렸다. 코스닥시장에선 1495개 종목이 하락해 역대 하락 종목 수 3위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매물을 쏟아냈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985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역대 순매도 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달 28일 이후 7거래일간 외국인이 팔아치운 주식은 8조5150억원어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이 결국 글로벌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우려가 외국인 투매를 불렀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상호)관세는 부과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발표했고, 농담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상호관세 부과 시행을 연기하거나 유예할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이날 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1년 내 경기 침체 가능성을 35%에서 45%로 올리면서 “9일 관세가 실제로 시행된다면 우리는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을 변경할 계획”이라고 했다.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파월 풋’(미국 중앙은행이 증시 구원투수로 나서는 것)이 요원한 상황이라는 점도 매도세를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에게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파월 의장은 최근 고율 관세에 따른 물가 상승을 경고하며 통화정책 변화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중간재를 주로 수출하는 한국 증시는 외국인에게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장 먼저 팔아야 할 자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최대 마진콜 위험을 맞닥뜨린 외국 헤지펀드가 올해 그나마 수익률이 좋은 아시아 증시 종목과 귀금속 등을 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세 후퇴해야 증시 반등”

각국의 실제 관세율 협상이 어느 선에서 마무리될지, 실물 경제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등이 모두 베일에 싸인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시장 전망도 극도로 갈리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이 얼마나 갈지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미국 관세 정책이 후퇴한다면 지금의 주가는 바닥권이 맞지만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바닥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저평가 상태인 만큼 장기 투자에 나설 만하다는 전망도 있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후행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3배로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날 공포지수를 나타내는 ‘V-코스피지수’는 44.23을 기록하며 전날 대비 65.04% 급등했다. 지수가 40을 넘어서면 보통 ‘패닉 국면’으로 해석한다. 유진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V-코스피지수가 40을 웃돈 뒤 3개월 후 코스피지수는 87% 확률로 상승했고, 6개월 후엔 100% 반등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이 과하게 저평가된 이후에는 대체로 제자리를 찾았다”며 “오래 버틸 수 있는 자금으로 분할 투자한다면 승률이 높은 구간”이라고 말했다. 부은영 루트엔글로벌자산운용 이사도 “‘관세 바람’이 지나고 나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인 감세 정책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증시가 반등하기 위해선 결국 미국의 관세 정책이 후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40% 미만으로 떨어지거나 인플레이션 수치가 높아져 트럼프 정부의 동력이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이를 ‘바닥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선한결/이시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