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히 반등한 반도체株…"안심하긴 일러"
‘관세전쟁’과 경기 침체 우려로 맥을 추지 못하던 국내 반도체 종목들이 일제히 반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화적인 발언으로 미국 내 대형 기술주들이 상승한 영향이 국내로 이어졌다. 국내 증시의 방향키를 쥔 반도체 업종과 관련해 ‘바닥을 쳤다’는 긍정론과 ‘여전히 불안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 “관세 우려 최악은 지났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종목의 상승으로 KRX 반도체지수는 전날보다 4.38% 올랐다. 이 지수가 하루 4% 넘게 오른 건 지난달 12일 후 한 달여 만이다. 가 4.14% 반등하며 6거래일 만에 18만원 선을 넘어섰다. 주가도 1.27% 상승했다. 몸집이 가벼운 반도체 장비주는 더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최근 SK하이닉스와 장비 공급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가 14.29% 올랐고, 테크윙도 10.98% 급등했다. 반도체 종목이 반등에 성공하며 코스피지수 또한 1.57% 오른 2525.56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2일 후 21일 만에 2500을 넘어선 것이다.

반도체주가 튀어 오른 것은 최근 주가를 짓누르던 관세와 관련해 긍정적인 발언이 나오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가) 현재 정도로 높게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중국과의 교착 상태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상황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언급했다.

증권가에서는 “최악은 지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반도체에는 상호관세가 부과되지 않지만 품목별 관세 적용을 위한 미국 정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다만 미국 증시와 채권 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추가적인 ‘관세 압박’이 나오기 어렵다는 기대가 작지 않다.

TSMC 실적과 함께 국내 반도체 수출 등 업황을 둘러싼 지표들도 긍정적이다. TSMC는 최근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고객사 수요가 거의 미친 수준이고, 관세에 따른 변화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매출 증가 예상치를 20%대 중반으로 유지했다. 지난 21일 관세청이 내놓은 4월(1~20일) 수출 잠정치에서도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10.7% 늘어난 약 65억달러로 집계됐다.

씨티은행은 최근 SK하이닉스가 올 1분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에 힘입어 7조30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증권사의 대략적인 전망치인 6조6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관측이다.

◇ “삼성전자, 4만원대 급락” 경고도

다만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관세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미국 관세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가 현실화하면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고관세가 경제위기 상황까지 불러온다면 삼성전자 주가가 4만6500원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 축소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아마존 역시 일부 AI 데이터센터 임대를 중단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외국인들이 반도체 업종 매도세를 지속하는 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이날 반도체지수가 반등했지만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826억원, 552억원어치 팔았다. 외인은 이달 들어 두 종목을 각각 2조5574억원, 2조6466억원어치 순매도 중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여전히 반도체 업종 투자심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관세 정책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