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아무래도 저렴한 공산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다이소나 쿠팡에서 편리하게 구매하는 물건 중 상당수가 중국산 제품이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타오바오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저렴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특히 어떻게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물류가 대륙을 가로질러 오는지, 폭스콘 공장에서 아이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디선가 저렴하게 값이 매겨진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이런 어렴풋한 대륙의 삶의 풍경에, 구체적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영화가 바로 지아장커 감독의 <천주정>이다.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천주정>은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났던 네 건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다. ‘따하이’는 돈에 눈이 먼 마을 촌장에 맞서기로 결심한 광부다. ‘조우산’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청부살인업자다. ‘샤오위’는 유부남 애인과 이별하려는 사우나 직원이다. ‘샤오후이’는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각각 산시, 충칭, 후베이, 광둥 등 서로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이곳들의 이름도, 풍경도 낯설고 새롭다.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는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사건을 접하면 그 이유를 묻게 되는데, 뫼르소는 단지 태양이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천주정> 속에서도 네 건의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사건이 산업화되어 가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아장커의 카메라는 많은 대사 없이도 중국 대륙의 고도성장과 그 이면을 포착한다. 개발되어 가는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반복적으로 한 프레임에 담긴다. 영화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며, 그 이미지 속에서 폭력의 징후를 발견하게 한다. 어떤 영화의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10년이 훌쩍 지나도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천주정>은 그렇게 세월을 견뎌내는 힘을 지닌 영화다.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천주정'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천주정>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는 뜻이다.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폭력의 원인이 개인의 선택이기보다는, 사회 구조나 시대적 환경에 의해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은 결국 감정의 동물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혹은 사람답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천주정>은 개발되어 가고 있는 중국의 풍경과 함께 묻고 있다.

정대건 소설가·감독

[영화 '천주정'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