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세계 2위 담수처리 사업인 워터솔루션 부문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올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이 강조한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알짜 사업을 잇따라 매각해 선제적으로 ‘현금 방파제’를 쌓겠다는 것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 알짜 팔아 선제적 현금 확보

LG화학의 워터솔루션 사업은 바닷물에서 염분과 오염물질을 제거해 공업용수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RO멤브레인(역삼투막) 필터를 제작한다. 현재 시장점유율은 21%로 일본 도레이케미컬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LG화학은 2014년 연구소 기업인 미국 나노H2O를 인수하면서 해수담수화와 관련한 특허와 기술, 인력 등을 확보한 이후 2015년 청주공장에 설비를 세워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 내 사업부에 소속돼 있다.
'현금 방파제' 쌓는 구광모…LG그룹 리밸런싱 속도
워터솔루션 사업은 지난해 매출 2500억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650억원을 올렸다. 해외에선 중동을 중심으로 LG화학 대신 LG워터솔루션이란 독자적 브랜드로 판매망을 구축했다. 이집트, 이스라엘 등 해외 시장에서 대규모 수주가 이어졌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냉각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전기차·배터리 내 수산화리튬 추출에도 쓰이면서 매출처가 다양해졌다.

2023년 LG화학은 약 1200억원을 투입해 청주 3공장 증설에 나서는 등 이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본격적인 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본업인 석유화학 분야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선제적으로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데 역량을 최우선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수년째 진행 중인 석유화학(NCC) 사업 지분 매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 LG그룹도 리밸런싱 본격화 조짐

'현금 방파제' 쌓는 구광모…LG그룹 리밸런싱 속도
LG화학이 사업 매각을 결정하자 대기업 사업 부문 인수에 특화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가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LG히타치워터솔루션이 전신인 테크로스를 인수해 수처리 산업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온 글랜우드PE는 담수화시장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외 각지의 수처리 기업에서 RO필터 주문이 밀려드는 만큼 글랜우드PE는 전 직원 고용보장은 물론 예정된 3공장 외 2000억원을 곧바로 추가 투입해 회사를 한 단계 키우기로 했다. LG그룹도 글랜우드PE의 밸류업 계획에 가장 큰 가점을 주고 사실상 독점 협상권을 부여했다. LG화학은 지난해 진단사업 부문 매각 때도 글랜우드PE와 호흡을 맞췄다.

재계에선 SK그룹에서 시작된 리밸런싱 기조가 LG그룹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구 회장은 올해 3월 첫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모든 사업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진입장벽 구축에 사업 우선순위를 두고 자본 투입과 실행의 우선순위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LG 각 계열사도 선제적인 현금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워터솔루션 사업 외에도 몸값이 5000억원대로 평가되는 에스테틱 사업부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분리막 사업 투자 유치 등 추가적인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을 예상하고 있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전기차 충전 사업을 중단하고 매각 등 회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준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