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보세요, 당신의 감정이 반응할 거예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정연진의 오늘의 미술
색으로 말하는 작가 션 스컬리
색으로 말하는 작가 션 스컬리
"야, 이건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
대구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단순한 색띠 앞에서 누군가 툭 내뱉는다. 언뜻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형상도 없고, 복잡한 붓질도 없다. 단지 색띠들이 수평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마치 무지개떡처럼 단순해 보이는 션 스컬리(Sean Scully)의 작품들. 하지만 이 단순함 안엔 오히려 더 깊은 의도와 감정이 숨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추상미술 앞에 서면 으레 떠오르는 질문이지만, 이상하게도 스컬리의 그림 앞에서는 그 질문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색 하나하나가 마치 무언가를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의미를 '이해’하기보다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언어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션 스컬리 © 2018 Photo by Nick Willing / 출처. 한경DB
스컬리는 194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런던의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자랐다. 예술 교육을 받는 대신, 그는 인쇄소에서 일했고, 거리의 패턴과 붉은 벽돌 틈의 빛을 기억하며 스스로 그림을 배웠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엔 예술가의 손보다 삶의 온기가 먼저 느껴진다. 색과 선, 면의 리듬 속엔 그가 살아온 길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컬리는 자신의 작업이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처음엔 쉽게 와닿지 않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감이 난다. 겹겹이 쌓인 줄무늬는 멀어진 사람들 사이의 거리처럼 보이고, 충돌하는 색의 긴장감은 이별 뒤의 감정처럼 요동친다. 얼핏 차가운 추상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살아 있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의 전시 작품 <성모마리아 삼면화(Madonna Triptych)> / 사진. © 정연진
그 따뜻함이 가장 깊이 배어 있는 시리즈가 바로 <Wall of Light>다. 따뜻한 오렌지, 차분한 파랑, 무거운 회색이 반복되며 감정의 층을 쌓아간다. 스컬리는 이 색들을 단순히 배치한 게 아니다. 어떤 색은 아들과 함께 본 멕시코의 석양이고, 또 다른 색은 아내와 걷던 아일랜드 해변의 하늘이다. 이 시리즈는 1980년대 초, 멕시코 유카탄에서 받은 인상에서 시작됐다. 그는 고대 마야 유적의 돌벽이 빛에 따라 붉게, 파랗게, 때로는 핑크빛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며, 공간도 감정처럼 변한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알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면, 문득 떠오르는 여름 저녁의 기억, 바람의 냄새, 누군가의 옆모습 같은 장면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스컬리의 추상은 그렇게 관객의 기억을 조용히 흔든다. 마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말이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의 전시 작품 <회전> / 사진. © 정연진
최근 몇 년간 스컬리는 회화에서 나아가 조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동전과 철빔을 쌓은 구조물, 녹슨 강철의 격자, 벽돌로 만든 벽 같은 작품들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서 장소의 에너지와 교감하고, 색채의 탐구를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서도 야외에 설치된 과 어미홀의 <38>은 그의 회화가 입체 구조물로 구현된 예다.
관객은 이 조각들 주위를 천천히 돌며,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패턴을 경험하게 된다. 스컬리는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해석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잠긴 감정을 따라가 보는 일이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의 전시 작품 <38> / 사진. © 정연진
그의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창은 시리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처럼 길게 이어진 색띠들은 단순한 형태 이상이다. 삶의 층위, 감정의 흐름, 관계의 결이 수평과 수직 속에 스며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작가의 개인사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스컬리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 상실을 겪었고, 이 시기의 작업들은 어두운 색조와 금 간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간이었고, 감정을 건너는 다리였다. 스컬리의 추상은 개인의 고통을 보편의 언어로 번역하며, 우리 모두의 감정을 꺼내어 말없이 어루만진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의 전시 작품 <Fronts and Backs> / 사진. © 정연진
추상을 즐기기 위해 거창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스컬리의 그림 앞에 섰을 때, 그저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이 색은 나에게 어떤 감정을 주는가?' 정답은 없다. 어떤 이는 노을을 떠올리고, 또 어떤 이는 먼 여행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예술이 이미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계속된다. 창밖의 건물, 횡단보도의 줄무늬, 저녁 하늘의 수평선 등 어느새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시 스컬리의 색과 구조를 만나게 된다. 스마트폰을 꺼내 그 순간을 포착해보자. 프레임을 맞춰보고, 색을 조정해보자. 그러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스컬리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혹시 당신이 대구미술관에서 션 스컬리의 작품을 만난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보자. 색과 형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나 감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과 작품 사이에 시작된 대화다. 추상은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감정을 담아내는, 가장 솔직한 시각의 언어다.
정연진 독립 큐레이터
대구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단순한 색띠 앞에서 누군가 툭 내뱉는다. 언뜻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형상도 없고, 복잡한 붓질도 없다. 단지 색띠들이 수평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마치 무지개떡처럼 단순해 보이는 션 스컬리(Sean Scully)의 작품들. 하지만 이 단순함 안엔 오히려 더 깊은 의도와 감정이 숨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추상미술 앞에 서면 으레 떠오르는 질문이지만, 이상하게도 스컬리의 그림 앞에서는 그 질문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색 하나하나가 마치 무언가를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의미를 '이해’하기보다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언어다.

스컬리는 자신의 작업이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처음엔 쉽게 와닿지 않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감이 난다. 겹겹이 쌓인 줄무늬는 멀어진 사람들 사이의 거리처럼 보이고, 충돌하는 색의 긴장감은 이별 뒤의 감정처럼 요동친다. 얼핏 차가운 추상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살아 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면, 문득 떠오르는 여름 저녁의 기억, 바람의 냄새, 누군가의 옆모습 같은 장면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스컬리의 추상은 그렇게 관객의 기억을 조용히 흔든다. 마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말이다.

관객은 이 조각들 주위를 천천히 돌며,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패턴을 경험하게 된다. 스컬리는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해석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잠긴 감정을 따라가 보는 일이다.

이는 작가의 개인사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스컬리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 상실을 겪었고, 이 시기의 작업들은 어두운 색조와 금 간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간이었고, 감정을 건너는 다리였다. 스컬리의 추상은 개인의 고통을 보편의 언어로 번역하며, 우리 모두의 감정을 꺼내어 말없이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계속된다. 창밖의 건물, 횡단보도의 줄무늬, 저녁 하늘의 수평선 등 어느새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시 스컬리의 색과 구조를 만나게 된다. 스마트폰을 꺼내 그 순간을 포착해보자. 프레임을 맞춰보고, 색을 조정해보자. 그러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스컬리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혹시 당신이 대구미술관에서 션 스컬리의 작품을 만난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보자. 색과 형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나 감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과 작품 사이에 시작된 대화다. 추상은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감정을 담아내는, 가장 솔직한 시각의 언어다.
정연진 독립 큐레이터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