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5억유로(약 2조3000억원)를 들여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기기 업체인 플랙트그룹을 인수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으로 주목받는 열 관리(공조) 시스템 시장을 잡기 위해서다. 삼성이 조(兆) 단위 인수합병(M&A)을 한 것은 2017년 9조3000억원에 오디오·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이후 8년 만이다. 산업계에서는 삼성이 로봇, AI 등 미래 사업 분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M&A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데이터센터 발열 잡는 HVAC…삼성, 반도체처럼 키운다
삼성전자는 14일 영국계 투자회사 트라이튼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독일 HVAC 전문기업 플랙트그룹 지분을 100% 인수한다고 밝혔다. 플랙트그룹은 데이터센터, 공장 클린룸, 산업·주거용 건물 등 여러 시설에 냉각 솔루션을 제공하는 유럽 최대 HVAC 업체다.

플랙트그룹은 2016년 트라이튼이 100년 넘는 역사의 스웨덴 HVAC 기업 플랙트우즈를 인수하며 탄생했다. 트라이튼은 같은 해 독일 엔지니어링그룹 GEA에서 분리된 HVAC 업체 덴코하펠을 합병해 규모를 키웠다. 플랙트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7억유로(약 1조11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HVAC는 세계 곳곳에서 AI 데이터센터가 건립되며 주목받고 있다. 열을 많이 발산하는 AI 데이터센터에는 효율적인 냉방 시스템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2024년 3016억달러인 HVAC 시장이 2034년 5454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은 “공조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 獨 플랙트그룹 2.3조원에 인수
AI 시대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2030년엔 60兆 규모로 고성장

냉난방공조(HVAC)는 인공지능(AI), 로보틱스와 함께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사업 분야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고위 경영진이 HVAC 인수합병(M&A)을 언급하기도 했다. 큼지막한 HVAC 기업이 매물로 나오면, 매수자 후보 리스트엔 언제나 삼성의 이름이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엔 미국 존슨콘트롤즈 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67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써낸 보쉬에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삼성이 HVAC에 눈독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후죽순처럼 건립되는 AI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키 포인트 중 하나가 ‘열 관리’여서다. HVAC의 공조 시스템은 열을 많이 뿜어내는 서버 등이 대거 장착된 AI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데 최적의 솔루션으로 꼽힌다. 그만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 HVAC 진출 포석

삼성전자는 플랙트그룹을 인수하기 전부터 생활가전(DA)사업부의 에어솔루션비즈니스팀을 주축으로 HVAC 사업을 벌였다. 2014년 미국 시스템에어컨 유통 전문회사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미국 HVAC 기업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삼성전자의 HVAC 사업 영역이 일반 가정과 중소 빌딩용 시스템에어컨 중심의 ‘개별 공조’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으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대형 시설용 ‘중앙 공조’ 시장은 다른 회사들 몫이었다. 반도체와 전력기기, 서버 등에서 나오는 열을 원활하게 식히고 빼내려면 개별 공조보다 몇 단계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영업 네트워크를 갖춰야 하는데, 삼성에는 이런 기술도, 네트워크도 없었다.

삼성이 찾은 해법은 M&A였다. 지난해 상반기 존슨콘트롤즈 인수전에서 쓴맛을 보자 유럽 1위 HVAC 업체인 플랙트그룹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15억유로(약 2조3000억원)에 세계 최고 중앙 공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품에 안았다.

◇세계 수준 기술력 보유한 플랙트

플랙트그룹의 모태는 1918년 설립된 스웨덴 HVAC 기업 플랙트우즈다. 2016년 이 회사를 인수한 영국계 투자회사 트라이튼이 같은 해 독일 엔지니어링 그룹 GEA 계열 HVAC 업체 덴코하펠을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비상장사인 플랙트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7억유로(약 1조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랙트그룹의 강점은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유럽 영업망이다. 냉각액을 순환해 서버를 식히는 액체냉각 방식인 ‘CDU’ 기술은 업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기술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데이터센터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DCS 어워드에서 혁신상을 받은 비결이다. 영국 사우스웨스트·미들랜드 데이터센터와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아랍에미리트 힐튼호텔에 이 회사 HVAC 시스템이 들어갔다.

◇AI 시대 황금알 잡는다

글로벌 중앙 공조 시장이 커질 것이란 관측에는 이견이 없다. 삼성전자는 시장 규모가 2024년 610억달러에서 2030년 990억달러로 연평균 8%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공조 시장의 성장성은 더 가파르다. 지난해 168억달러에서 2030년 441억달러로 연평균 증가율은 18%에 이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생성형 AI, 로봇, 자율주행 등의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용 HVAC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플랙트그룹을 인수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연내 플랙트그룹 M&A를 마무리하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빌딩 통합 제어솔루션(b.IoT, 스마트싱스)과 플랙트그룹의 공조 제어솔루션을 결합해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항, 쇼핑몰, 공장 등 국내외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영업·서비스를 강화해 종합 HVAC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수/김채연/박의명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