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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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한 종목만 담는 레버리지·인버스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 국내 단일종목을 ETF로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자에겐 삼성전자 주가 향방에 투자할 새 수단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지만,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주가 오르면 두 배 차익 가능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홍콩 2위 ETF 운용사인 CSOP는 오는 19일 ‘CSOP 삼성전자 데일리 2X 레버리지’와 ‘CSOP 삼성전자 데일리 -2X 인버스’를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할 예정이다. 레버리지 ETF는 삼성전자 하루 등락폭의 2배, 인버스레버리지 ETF는 같은 폭만큼 거꾸로 따라가는 구조다.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 1% 오르면 레버리지 ETF는 2% 뛰고, 인버스레버리지 ETF는 2%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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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가 상승을 예상하는 투자자라면 레버리지 ETF를 통해 더 큰 차익을 노릴 수 있다.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라면 더욱 간편해졌다. 지금까지는 주식을 공매도하거나 선물을 매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공매도나 선물 매도에 나서려면 사전 교육과 모의거래, 증거금 예치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외에 상장된 인버스 ETF 투자 땐 이런 장벽이 없다.

다만 비싼 투자비용엔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버리지·인버스형 ETF 보수는 일반 상품보다 훨씬 높다. 홍콩에 상장하는 ‘삼성전자 ETF’의 총보수도 연 2%에 달한다. 기초통화가 미국 달러란 점도 수익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 주가와 달러가치 변화가 수익률에 동시에 반영되는 구조란 얘기다.

적용 과세 역시 다르다. 홍콩 등 해외증시의 매매 차익이 연간 250만원을 넘으면 양도소득세(22%)를 내야 한다. 국내 주식의 매매 차익은 기본적으로 비과세다.

◇한국인 유치 나선 홍콩거래소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단일종목 ETF가 한국거래소 대신 홍콩에서 먼저 출시되는 건 국내의 촘촘한 자본시장 규제 때문이다. 국내 자산운용사는 한 종목만 담은 ETF를 출시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규정상 채권은 3종목, 주식은 10종목 이상 ETF에 담도록 강제하고 있다. 종목당 비중이 30%를 넘어서도 안 된다. 홍콩뿐만 아니라 미국 등 주요국 증시엔 없는 규제다.

세계 최대 ETF 시장인 미국에선 단일종목 ETF가 주요 상품군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7월 첫 상품을 시작으로 단일종목 ETF는 총 175개 상장돼 있다. 이 시장만 270억달러(약 38조3700억원) 규모다.

국내 단일종목 ETF 상장이 막힌 사이 서학개미(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는 적극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 단일종목 ETF 시장에선 큰손으로 통할 정도다. 세계 최대 단일종목 ETF인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2X’(티커명 TSLL)의 한국인 투자 비중은 42.51%다. 2위인 ‘그래닛셰어즈 2X롱 엔비디아 데일리’(NVDL)의 한국 투자자 비중은 15.11%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단일종목 인버스레버리지 ETF 시장에서 한국인 투자자 비중이 22%로 집계됐다.

해외 거래소는 한국인 투자자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홍콩이 대표적이다. 홍콩의 첫 레버리지 ETF 상장은 한국(2010년)보다 늦은 2016년이지만 시장 확대 속도는 훨씬 빠르다. 올 3월 테슬라 엔비디아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9종을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였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를 상장한 것도 홍콩이 아시아권 최초다. 홍콩의 한 운용사 임원은 “홍콩과 서울 간 시차가 미국과 비교해 유리하기 때문에 한국인 투자자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 뭉칫돈이 해외로 빠르게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 운용사 ETF 담당임원은 “한국은 종목 수, 상관계수 등 ETF 관련 규제가 지나치다”며 “글로벌 운용사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만 발이 묶인 꼴”이라고 지적했다.

나수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