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홍콩증시 상승세가 글로벌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연초 중국의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인 딥시크 등장으로 인한 기술주 훈풍에 이어 정부의 경기 부양책, ‘애국 투자’ 열기까지 더해지며 투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미·중 관세협상 성공 소식에 이어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의 기업공개(IPO)까지 임박해 당분간 홍콩과 중국 증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그래픽=이은현 기자
그래픽=이은현 기자

홍콩 증시로 몰리는 투자금

1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홍콩항셍지수는 올 들어 16.43% 급등했다. 홍콩에 상장한 중국 본토 기업 중심인 홍콩H지수 역시 같은 기간 16.25% 뛰었다. 글로벌 주요 26개국 가운데 러시아(RTSI지수·24.02%)와 독일(DAX지수·19.38%), 이탈리아(FTSE MIB지수·18.93%), 멕시코(IPC지수·17.11%)에 이어 각각 5, 6위에 올랐다. 한국 코스피지수(9.48%) 수익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기간 미국 S&P500지수는 1.30%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5.37% 하락했다.

최근 홍콩증시 투자심리는 급격히 개선되고 있다. 지난 1월 딥시크 등장 이후 기술주 랠리가 이어진 데다 중국 당국이 내수 부양을 위해 과감한 통화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5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췄다. 지준율을 낮추면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대출이나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조치로 시장에 1조위안(약 193조원)의 유동성이 공급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2일 미국이 고강도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현지에서 불고 있는 ‘애국 주식 투자’ 열기도 증시에 활력을 주고 있다. 현지 금융데이터 제공업체 윈드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 본토에서 홍콩증시로 유입된 ‘남향자금’은 6053억2500만홍콩달러(약 108조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유입액(8078억홍콩달러)의 75%에 육박하는 금액을 넉 달 만에 달성했다. 남향자금은 중국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자금으로 이뤄져 있어 현지 투자 열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롄셔는 “올해 4월까지 남향자금 투자금이 전년 동기 대비 세 배에 이른다”며 “올해 사상 최대액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홍콩 주식시장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올해 남향자금 유입액 전망치를 기존 750억달러에서 1100억달러로 46.67% 올려잡았다.

IPO 초대어, CATL 입성까지

미·중이 상대국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데 전격 합의한 점도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은 대중국 관세를 30%로, 중국은 대미 관세를 10%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90일간 ‘잠정 휴전’에 들어가자 글로벌 투자업계는 관세 인하 효과를 감안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종전 4%에서 4.6%로, JP모간도 4.1%에서 4.8%로 올렸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대 이상의 합의 결과가 도출된 데다 추가 관세 인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긍정적인 투자심리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홍콩 IPO 시장 최대어로 거론되는 CATL의 상장이 임박한 점도 증시 추가 상승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다. CATL은 20일 홍콩증시에 상장될 예정이다. 이번 IPO를 통해 최대 53억달러(약 7조4227억원)의 자금 조달을 추진한다. 2021년 홍콩에서 62억달러를 조달한 콰이쇼우 IPO 이후 4년 만의 최대 규모 기업공개다. 수년 만의 대규모 IPO로 홍콩증시에 활력이 돌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홍콩증시의 IPO 자금 조달 규모는 전년 대비 81.82% 증가한 1600억홍콩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기술기업이 1분기 호실적을 공개하고 있는 점도 호재로 꼽힌다. 텐센트는 올해 1분기 매출이 1800억20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고 14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당분간 중화권 기술주가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두 국가의 첨단 기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아 중국 본토에선 쿼촹반(중국판 나스닥), 홍콩 증시에선 항셍테크지수 중심으로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백은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단기적으로 중국권 증시에서 기술주와 수출주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