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포기하겠습니다.” 1986년 10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렇게 말하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레이건이 3년 전 발표한 우주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어구상’(SDI·일명 스타워즈 구상)을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이런 요구는 감당할 수 없는 군비 경쟁 때문이었다. ‘소련이 놓은 덫’으로 받아들인 레이건이 거부하면서 회담은 깨졌다. 이후 미국과의 대대적 군비 경쟁이 소련을 경제 파탄으로 몰아가 붕괴시킨 한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700억달러를 투입한 SDI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3년 폐기됐다. 미국은 이후 ‘제한공격방어계획(GPALS)’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등을 추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들어 요격시스템을 다시 본격 추진했고, 패트리엇, 사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SM 시리즈 등을 갖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전체를 보호하는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Golden Dome)’을 임기 내 실전 배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존 지상과 해상 기반의 방어체계로는 북한, 중국, 러시아의 극초음속 등 첨단 미사일을 요격하기 힘들어 인공위성에 탑재한 센서로 추적하고 우주에 배치한 무기가 상승 단계의 미사일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제2의 스타워즈 구상이다. 여전히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하고, 수천억~수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예산 때문에 임기 내 실현은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트럼프 구상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 우주 군비 경쟁에 진작 불이 붙었다는 점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각국의 우주군 창설이 잇따르는 판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는 미사일로 인공위성을 요격하는 시험을 했다. ‘킬러 위성’ 도입과 우주 레이저 무기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도 지난해 6월 우주작전전대를 창설했고, 초보적 수준이지만 군용 정찰위성도 띄우고 있다. 방어는 물론 공격 수단까지 우주전쟁 시대 만반의 대비를 갖춰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