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은 장원준 전 신풍제약 대표(가운데, 창업주 2세)가 2023년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은 장원준 전 신풍제약 대표(가운데, 창업주 2세)가 2023년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대감에 주가가 21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폭락한 신풍제약의 주가가 다시 급등하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선 기업의 실제 체력(펀더멘털)과는 관계 없이 테마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올랐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중화권서 코로나19 확진자 늘자 주가 또 '들썩'

21일 장중 유가증권시장에서 신풍제약은 가격제한폭(29.90%)까지 치솟은 1만470원에 거래되고 있다. 2020년 9월 고점(21만4000원)과 비교하면 20분의 1토막 수준이지만, 한달 전에 비해선 39.97% 높다.
'상한가 쳐도 고점 대비 20분의 1' 기대감에 주가 급등한 이 기업
신풍제약 주가 상승은 최근 홍콩과 중국 본토,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입원 치료자가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만에선 지난 11~17일 코로나19 환자가 1만997명으로 전주 대비 88.2% 급증했다. 홍콩의 지난 4주간 관련 사망자는 30명에 달한다.

이날 장중 다른 코로나19 관련주도 주가가 줄줄이 올랐다. 진원생명과학은 가격제한폭인 29.92%만큼 올라 3365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가격제한폭(30%)까지 오른 셀리드는 이날 27.50% 오른 6630원에 거래되고 있다. 메디콕스(24.19%), 휴마시스(25.80%), 엑세스바이오(23.64%), 더바이오메드(23.47%) 등도 주가가 올랐다.

매년 반복…코로나19 매출 '0원'에도 주가 움직여

증권가에선 코로나19 테마주 주가 단기 과열에 유의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코로나19 관련주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매년 늦은봄과 여름 사이, 연말에 각각 단기 급등한 뒤 주가가 다시 내리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는 하위 변위종 등장 주기가 약 6~8개월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풍제약도 그렇다. 작년 8월5일 1만460원에서 같은달 19일 1만8740원까지 올랐다가 같은달 말 1만3250원으로 다시 내렸다. 이후 주가는 꾸준히 더 빠져 지난 2월엔 주당 1만원선이 깨졌다. 지난달부터 이달 중순까진 주가가 주당 7000원대를 헤맸다.
'상한가 쳐도 고점 대비 20분의 1' 기대감에 주가 급등한 이 기업
신풍제약이 코로나19 치료제로 내는 매출도 '제로'다. 신풍제약은 2020년 자사 말라리아 치료제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쓸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발표해 주가가 약 7개월간 30배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신풍제약은 실제 임상시험에서 목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치료제 전용이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코로나19 치료제로 발생한 매출도 없다. 신풍제약은 작년 연간으로는 영업손실 46억원, 올 1분기에는 18억원으로 각각 적자를 봤다.

오너는 최근 '91억원 횡령 혐의' 판결…미공개정보이용도 조사 중

설상가상으로 오너 리스크도 잇달아 불거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일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원준 전 신풍제약 대표에게 실형을 확정했다. 신풍제약의 창업주 2세인 장 전 대표는 신풍제약의 실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앞서 장 전 대표가 2008년 4월부터 2017년 9월 약 10년간에 걸쳐 비자금 총 91억원을 조성해 자사 주식 취득과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보고 장 전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원재료 납품가를 부풀리거나 거래한 것처럼 꾸며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을 썼다는 설명이다. 다만 법원은 대부분의 비자금 조성 범행을 장 전 대표의 아버지인 고(故) 장용택 전 신풍제약 회장이 주도했다고 판단해 장 전 대표에 대해선 9억여원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신풍제약은 이에 대한 횡령·배임사실 확인 공시를 제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거래소로부터 지난 12일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받았다.

장 전 대표는 신풍제약의 주요 정보가 시장에 공개되기 전 자신의 주식 거래에 써 대규모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로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장 전 대표와 신풍제약의 지주사 송암사를 미공개 중요정보이용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주식 거래는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거래다.

증선위에 따르면 장 전 대표는 내부자들만 알 수 있는 신약 개발 관련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 손실 약 369억원을 회피했다. 신풍제약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한 사실을 미리 알고, 이를 시장에 공개하기 전에 자신이 보유한 신풍제약 주식을 시간외 거래에서 대량으로 팔아치웠다는 설명이다.
'상한가 쳐도 고점 대비 20분의 1' 기대감에 주가 급등한 이 기업
신풍제약 창업주 일가가 소유한 가족회사 송암사도 당시 신풍제약 주식을 대량매도했다. 증선위는 송암사가 이 과정에서 거둔 매매차익이 1562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당시 송암사의 블록딜은 공시 자체만으로도 주가를 끌어내려 개인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임상시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었던 시장에서 임상시험 도중 창업주 일가가 막대한 규모의 지분을 매도했다는 사실이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원전 외 별다른 산업 주도 섹터가 없는 와중 코로나19 테마가 부각돼 관련주들 주가가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는 코로나19 관련 매출이 없는 기업이더라도 투자자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이 쏠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