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린다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면 나는 혁명할 것이다, 조국에서 내 사랑의 시작은 신기루였고 내 사랑의 끝은 폐허였다 세계는 오래전부터 하나인데 사랑하는 조국은 여전히 나눠져 있다 21세기의 하나뿐인 분단 민족이여 나는 이 이분법이 이제는 지겹다 초원으로 가서 사랑을 하고 싶으니 쇠를 녹이는 불 끓는 사랑을 하고 칸이 될 수 있는 사내를 낳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내 성씨를 물려주고 네 제국을 만들라 유언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 북쪽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남쪽에서의 꿈은 꿈마다 숨이 막힌다 칸이 아니면 또 어떠랴, 딸이 태어난다면 살리흐라는 뜨거운 이름을 주고 초원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아시아의 처음에서 유럽의 끝까지 그녀의 시가 하나의 언어가 되는 유라시아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나는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몸에 꿈 하나 숨기고 남쪽과 북쪽의 국경을 넘을 것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죄가 된다면 나를 구금하라, 대륙의 피에 반도의 피를 섞으려는 것이 유죄라면 나도 혁명가처럼 서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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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재능시낭송대회 본선에서 이 시를 낭송한 문혜경 씨가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시 자체도 좋지만 낭송 솜씨도 뛰어났습니다.
이 시는 낭송의 감정 곡선을 타기 좋은 구조를 지녔습니다. 여기에다 강한 리듬과 선명한 이미지, 개인과 민족의 서사를 담은 웅대한 주제 의식까지 갖췄습니다.
우선 화자의 서사와 감정선이 뚜렷합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린다”는 첫 구절부터 “나도 혁명가처럼 서서 죽을 것이다”라는 마지막 구절까지 선형적인 구조 속에서 감정이 점층적으로 고조됩니다.
언어가 명확하고 간결해서 전달력이 뛰어난 것도 장점입니다. 문장이 시적이면서도 일상어에 가깝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내 사랑의 시작은 신기루였고/ 내 사랑의 끝은 폐허였다” “고백하자면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 등의 문장은 복잡한 수사 없이도 이미지와 정서를 선명하게 그려냅니다.
반복 구조와 리듬의 생동감도 좋습니다. 이는 운율과 웅장함, 청중을 향한 호소력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마지막 연의 장중한 톤은 낭송의 절정을 장식하기 좋지요.
강한 이미지와 청각적 연상은 또 어떤가요. “쇠를 녹이는 불 끓는 사랑” “칸이 될 수 있는 사내를 낳을 것이다” “유라시아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등의 선명한 이미지와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상상력이 청중의 눈앞에 해당 장면을 펼쳐주는 효과를 줍니다.
이 시는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민족과 역사의 비극을 끌어안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려는 시인의 선언문처럼 들립니다. 그 속에 사적 고백과 역사적 선언이 공존하지요. 낭송자는 자전적인 고백(사랑과 꿈)과 사회적 울림(분단과 국경, 혁명) 사이의 긴장을 잘 조율하면서 시 전체의 밀도를 높였습니다.
나아가 경계를 넘는 자의 두려움과 용기, 분단을 끌어안고 그 위에 사랑과 언어의 새 꽃을 피우는 가능성을 조화롭게 살렸습니다. 그 덕분에 독자와 청중들은 즐거이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마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혜경 씨가 대상을 받은 것도 이러한 시적 특성과 낭송의 매력을 잘 접목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도 재능시낭송대회가 펼쳐집니다. 시 낭송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재능시낭송대회는 재단법인 재능문화와 한국시인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종합교육문화기업 재능교육이 후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낭송대회입니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과 함께합니다.
1991년부터 시작한 이 대회에는 그동안 3만60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초등부, 중고등부, 성인부를 대상으로 1차 온라인 예선, 2차 온오프라인 예선, 3차 본선으로 구분해 진행합니다.
1차 온라인 예선 마감은 6월 1일입니다. 이날까지 3분 이내의 시낭송 동영상을 제출하면 됩니다. 신청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할 수 있답니다.
1차 온라인 예선의 부문별 입선자는 2차 온오프라인 예선에 진출해 학생부는 실시간 화상경연, 성인부는 오프라인 무대 경연을 펼칩니다. 2차 예선에서 입선한 참가자는 3차 본선 대회에 진출해 부문별 대상의 영예를 두고 경합을 벌입니다.
본선 대회 성인부 대상 수상자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상금 300만원이 수여되며, 동상 이상 수상자에게는 한국시인협회와 재능문화가 인증하는 시낭송가증서가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