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였다. 1984년 5월 100만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한국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은 가톨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방한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1989년 두 번째 방한 때는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신자들과 손잡고 아리랑을 불렀다. 서울 절두산 순교 성지에는 그의 흉상이 있다.그는 한국뿐 아니라 20세기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또렷한 족적을 남긴 교황이기도 하다. 폴란드인으로 최초의 공산권 출신 교황이다. 즉위 8개월 만에 소련 위성국가인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것은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였다. 방문 이듬해 그단스크 레닌조선소의 전기 노동자 레흐 바웬사의 ‘솔리대리티’ 운동이 시작된 것. 1981년 5월 교황 피격 사건에는 소련 정보기관 KGB의 개입 의혹이 있었다.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 붕괴에 혁혁한 역할을 했다면, 얼마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가장 진보적 성향의 교황이다. 2014년 방한 때 벤츠 방탄차 대신 기아의 소형차 쏘울을 탔을 정도로 소탈한 그는 해방신학의 태동지 남미 출신답게 사회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특히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할 정도로 성소수자에게 관대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교리 해석은 전통적 신도 층에서 큰 반발을 샀다. 가톨릭 신자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그를 “마르크스주의적 파괴자”라고 비난했다.세계 패권국에는 교황 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레오 14세가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 교황에 올랐
캐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51번째 주 편입 논란 이후 군사력 증강에 눈을 떴다. 지난 3월 북극권 배치용으로 지평선 너머 3000㎞까지 감시할 수 있는 첨단 레이더 장비를 6조원에 호주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캐나다 최대 TV 방송 CBC는 며칠 전 한국의 방산 실력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K방산의 대표 상품인 K-9 자주포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의 잠수함 건조 능력 등을 소개했다. 기술력과 가성비, 짧은 리드 타임과 납기 준수, 유지·보수 능력까지 갖춘 ‘방산 명품’으로 조명받았다. CBC는 방산 신흥 강국 한국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무기고”라고 표현했다.한국은 자유 진영의 새 무기고는 물론 세계 최고의 제해력을 가진 미국의 조선 독·함정 정비창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미 해군의 구매·획득 업무를 담당하는 해군성의 존 펠런 장관이 얼마 전 방한해 양국 간 조선 협력 방안을 점검하고 돌아갔다. 트럼프는 ‘미국 조선업 재건’ 특명을 부여한 펠런 장관에게 인사청문회가 있던 날 새벽에 녹슨 함선 사진을 보내고, 대화할 때마다 ‘조선, 조선’을 주입하고 있다고 한다.미국은 선박 건조 능력이 전 세계 건조량의 0.2%에 불과할 정도로 조선업 생태계가 붕괴했다. 중국의 건조 능력은 미국의 233배에 달한다. 해군력의 지표 중 하나인 함정 수에서 2000년만 해도 미국 318척, 중국 110척으로 미국이 앞섰으나, 2020년 역전(미국 293척 대 중국 350척)된 뒤 지난해에는 297척 대 370척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30년에는 중국 함정 수가 435척으로 미국(304척)에 비해 40% 이상이나 많아질 전망이다.미국은 해군력 부활을 위해 향후 30년간 360여 척의 군함
미국 샌프란시스코 피어33에서 배로 15분이면 닿는 바위섬 앨커트래즈는 샌프란시스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가마우지의 스페인어 알카트라세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군 요새였다가 1934년부터 1963년까지 29년간 연방 교도소로 쓰였다. 관광객들은 오디오 가이드 투어로 교정 시설을 둘러보게 된다.‘사회의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고, 감옥의 법을 어기면 앨커트래즈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 높았다. 수감자 대부분이 살인, 은행강도 등 흉악범들로, 미국 마피아의 대명사 알 카포네와 역시 금주법 시대 대표적 갱스터 ‘머신 건(기관총) 켈리’ 등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를 지척에 둔 감옥살이는 잔인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앨커트래즈가 유명했던 것은 샌프란시스코만의 빠른 해류와 곧바로 저체온증이 오는 차가운 수온, 상어 떼 탓에 탈옥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앨커트래즈에서는 총 14번의 탈옥 시도가 있었는데, 공식적으로는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교도소 폐쇄 1년 전인 1962년 프랭크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 등 30대 죄수 세 명의 탈옥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2년에 걸쳐 스푼 등 식기로 통풍구 뒤에 터널을 파고, 석고로 인형을 만들어 자는 것처럼 위장해 감방을 탈출한 뒤 우비로 뗏목을 만들어 탈옥한 사건이다. 대대적인 수색에도 이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주변 해역을 지나던 배의 선원들이 해안가를 떠다니는 시체를 봤다고 증언한 것을 토대로 익사 처리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알카트라즈 탈출’이 이를 다룬 영화다.그 앨커트래즈가 60여 년 만에 교도소로 재가동될 것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통령의 영어 실력과 관련해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다.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보좌진과 열심히 예행연습을 했다. 클린턴을 보면 “How are you?”라고 해라, 그러면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돌아올 테니 “Me, too”라고 하면 된다고 대본을 짰다. 그러나 경상도 억양이 센 YS의 ‘하와 유’는 클린턴에게 “Who are you?”로 들렸다. YS가 조크한다고 여긴 클린턴은 조크로 “나는 힐러리 남편”이라고 받아쳤다. 압권은 이 대답에 YS가 연습대로 “미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각색이 들어간 얘기지만, “후아 유”, “힐러리의 남편” 대목은 실제 상황이었다.대통령은 늘 통역을 대동한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면 해외 지도자들과 돈독한 인맥을 쌓고, 허심탄회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 덕에 국운을 바꾸는 일도 일어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교황 장례 미사가 열린 바티칸 성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무릎을 맞댄 15분간의 담판 끝에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그간 러시아 편을 들던 트럼프가 이 대화 뒤 마음을 바꿔 광물협정서에 “러시아의 전면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명문화한 것. 우크라이나가 그간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은 배경에도 미국과 영국 의회에서 젤렌스키의 감동적 연설이 큰 역할을 했다.6·3 대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실력이 출중한 후보가 많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역대 한국 관료 중 최고의 영어 달인으로 꼽히는 한덕수 전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을 외우
어렸을 때부터 이미자 하면 늘상 떠오르는 게 성대 해부였다. ‘이미자가 죽으면 성대를 해부하기로 일본 의사랑 계약이 돼 있대. 그러고는 성대만 따로 박물관에 보관한대.’ 한때 우리 사회에 짠하던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때인 1970년대 후반이었다. 물론 낭설이다. 이미자는 그만큼 노래를 잘했다.한국 가수 중 최초 기록을 가장 많이 가진 가수는 단연 이미자다. 베트남 파병 장병 위문 공연, 평양 단독 공연 모두 이미자가 처음이다. 1960년대 이미 일본 음악회사의 전속 가수로 음반을 냈으니 해외 레이블 계약도 최초다. 대중 가수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올랐고, 금관문화훈장도 처음 받았다. 1990년에 음반 560장, 취입곡 2069곡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는 2500곡이 넘는다.본인조차 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수많은 곡 중 그가 가장 아끼는 노래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등 금지곡 트리오다.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 OST인 동백아가씨는 섬처녀 미혼모인 여주인공이 ‘동백빠아(bar)’에서 일하는 여급이 된 데서 유래했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리고, 35주 연속 인기 차트 1위에 올랐으나 ‘왜색풍’이란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섬마을 선생님’은 일본 노래를 표절했다는 게 이유였으나, 기실은 그 일본 곡이 나중에 나온 노래다. ‘기러기아빠’는 나라가 한창 뻗어나가는 시기에 비탄조의 처량한 곡은 부적절하다고 해서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모두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됐다.이미자(83)가 지난 주말 고별 공연을 했다. 1959년 ‘열아홉순정’으로 데뷔한 지 딱 66년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윤희숙 원장을 스타 정치인으로 키워준 건 그 유명한 5분짜리 연설이었다. 2020년 7월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임대차 3법 비판 연설에서 윤 원장은 날카로운 눈매, 똑 부러진 목소리, 쉬운 언어와 명징한 논리로 국회 본회의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우리나라 1000만 인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법을 만들 때는…”이라며 축소 심의마저 생략한 날림 입법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같은 당 황보승희 의원은 “전율”이라고 표현했다.5분 연설이 ‘설득’의 힘이었다면, 그해 말 윤 원장은 ‘결기’ 있는 정치인의 한 전형을 보여줬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입법을 반대하면서 12시간47분간 연설로 당시로선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세웠다(현재는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의 15시간50분). 정진석 의원은 “한국의 마거릿 대처”라고 했다. 그는 연설 후반부에 탈장 증세가 와 한동안 고생했다.의정 활동 마무리도 드라마틱했다. 2021년 8월 부친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지체 없이 바로 다음 날 의원직을 던져 버렸다. 본인이 관여한 일은 아니었으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치열하게 비판한 당사자로서 ‘책임’지겠다는 자세에서다. 윤 원장이 사퇴를 말리러 온 이준석 대표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말은 “이게 내 정치”였다. 자신들의 비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던 그 무수한 의원의 치졸함과는 사뭇 대조적이다.윤 원장이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24일 방송된 6·3 대선 첫 정강·정책 연설을 통해서다. 그는 “(계엄 같은 처참한 결과에 대해)
중국과 해상 영토 분쟁의 교과서 같은 나라가 필리핀이다. 벤치마킹은 물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중국은 1994년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의 미스치프 리프(암초)를 우기에 필리핀 해군이 일시적으로 근무를 중단한 틈을 타 무력 점거했다. 필리핀 팔라완섬에서 250㎞, 중국 하이난섬에서 500㎞ 떨어진 곳으로, 엄연히 필리핀의 200해리(370.4㎞)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다. 중국은 장제스 국민당 시절 11단선에서 파생한 것으로, 남중국해의 90%가 중국 영해라는 U자 형태의 9단선 지도를 근거로 들이댔다. 필리핀은 군사 행동과 외교를 병행하는 이중 접근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스치프 리프에서 37㎞ 떨어진 모래톱에 폐군함을 고의로 좌초시킨 뒤 시멘트와 철강, 케이블 등으로 고착해 해병대원들을 상주시켰다. 비례 원칙에 따른 것이다.외교적으로는 2014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때 이 문제를 헤이그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로 끌고 갔다. 2016년 7월 판결은 필리핀의 완승이었다. 중국이 주장한 9단선 등 모든 역사적 근거를 포함해 행위의 합법성이 일절 인정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중국과의 분쟁에서 결정적 호기를 잡았으나, 이후 사태는 한 지도자의 영향으로 정반대로 흘러갔다. 학생 운동가 출신 반미 좌파 정치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장본인이다.PCA 판결과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두테르테의 첫 방문지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욕설을 퍼붓던 두테르테는 중국에 가서는 “중국인의 핏줄을 타고났다”며 비위를 맞췄다. 중국도 미국 대통령급에 준하는 최고의 환대를 베풀었다. 두테르테
블록 완구 레고, 음향 브랜드 뱅앤올룹슨, 해운회사 머스크. 모두 덴마크가 자랑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그러나 그 어떤 회사보다 덴마크인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한 회사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생산하는 노보노디스크다.이 회사의 주가가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지난해 6월, 시가총액은 6337억달러로 덴마크 국내총생산(GDP, 4071억달러)보다 훨씬 높았다. 프랑스의 명품기업 LVMH와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을 제치고 유럽 시가총액 정상에 올랐다. 공장을 연중무휴 24시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못 맞추자 수요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TV 광고도 끊었다. 덴마크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출의 60%가 북미 시장에서 나오는데, 벌어들인 달러 상당 부분을 덴마크 통화 크로네로 환전하다 보니 크로네 통화 가치 상승 압력이 커져 덴마크 중앙은행이 환율 유지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그 노보노디스크가 수난을 겪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은 2840억달러로 고점 대비 절반 아래다. 유럽 시가총액 순위도 독일 SAP에 선두를 내줬다. 불행한 집안은 이유가 제각각이라고 하듯, 노보노디스크의 위기 원인도 복합적이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정치적 리스크, 공공보험 적용 제한 같은 시장 환경 요인까지 겹쳤다.물론 핵심은 내적 역량과 경쟁 구도에 있다. 위고비 후속 물질인 ‘카그리세마’ 임상 결과가 기대 이하로 나오자 증시에서 맹폭 당해 주가가 20% 이상 폭락하며 시총이 하루 만에 1250억달러 증발했다. 여기에 경쟁사로부터 카운터블로까지 맞았다. 지난 17일 미국 일라이릴리의 하루 한 번 먹는 비만 치료제 ‘오포글
미국 하와이 동남쪽 태평양상에 클라리온과 클리퍼톤이란 두 단열대 층이 있다. 이 일대를 아우르는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CCZ)은 동서 7240㎞ 길이에, 면적은 450만㎢ 규모다. 이 해역 밑바닥이 해저 광물 보고로 급부상했다.해저 진흙 평원에는 ‘바닷속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망간단괴의 거대한 밭이 있다. 망간단괴는 지름 5~10㎝의 감자처럼 생긴 암석으로, 해저 화학 작용으로 침전된 금속산화물이다. 성장 속도가 1000년에 0.01~1㎜ 정도이니, 현재 크기가 되는 데만도 수천만 년이 걸렸다. 여러 종의 금속 성분을 포함한 다금속단괴이나 망간을 가장 많이 함유해 망간단괴로 불린다. 망간(Mn) 외에 구리(Cu), 니켈(Ni), 코발트(Co) 등 요즘 몸값이 높은 광물이 다량 포함돼 있다.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쓰이는 중요한 금속 자원들이다.CCZ에는 211억t의 망간단괴가 분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망간 75억t, 니켈 3억4000만t, 구리 2억7500만t, 코발트 7800만t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육상 매장량과 비교하면 니켈은 3배, 망간은 5배, 코발트는 9배나 더 많이 바다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공해상의 탐사 및 개발에 대한 승인 권한은 국제해사기구(ISA)가 갖고 있다. ISA는 해양 생태계 보호 등을 이유로 아직 상업적 채굴을 승인한 적은 없다. 올 7월께 관련 규칙이 마련될 예정이다.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망간단괴를 국가전략물자로 비축하도록 하는 행정명령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망간단괴 심해 채굴 기술과 채굴권 확보에서 가장 앞서 있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조치다. 중국은 올여름 8800t 규모의 망간단괴 시험 채굴에 나선다. 배에 전용장치를 매달아 5000m
차기 대선이 6월 3일로 확정됐다. 미증유의 세계사적 혼란을 불러온 도널드 트럼프 2기에 우리의 생존을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시간이다. 대통령 궐위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원회라는 예비 학습 기간 없이 곧바로 실무에 들어가는 점도 선택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트럼프 2기와 같이 가게 될 대한민국호 차기 선장의 핵심 자질 다섯 가지를 정리해봤다.제1 덕목은 국제 감각이다. 지금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면 눈을 들어 백악관을 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지구촌 동향에 밝은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트럼프의 ‘영혼의 단짝’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역사상 국제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참모가 아니라 지도자 자신의 국제 감각이 탁월해야 하는 이유다. 율사 또는 586 운동권 출신이 대부분인 한국 정치인에게 가장 부족한 자질도 이 부분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미국에 처음 가봤다고 할 정도로 우물 안 개구리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이미 G7 반열에 오른 한국은 이제 세계인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나라다. 지도자의 해외 인맥과 외국어 실력, 국제 정세 지식은 국격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두 번째는 경제 전문성이다. 가히 3차 세계대전 수준의 통상 전쟁을 촉발한 트럼프 시대, 지도자의 경제 지식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캐나다가 좋은 예다. 트럼프 취임 직후 25% 관세 폭격과 51번째 주 편입 조롱을 당한 캐나다가 기대하는 구원투수는 비정치인 출신 경제 전문가인 마크 카니다.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골드만삭스를 거쳐 캐나다 중앙은행
2011년 9월 월스트리트에서 30여 명이 모여 실업 사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이후 73일간 계속되면서 세계 주요 도시와 한국 여의도까지 번졌다. 그들이 내건 구호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와 ‘우리는 99%’다. 경제난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금융자본의 탐욕성을 고발하는 대명사가 됐다.2015년 1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프랑스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에 침입해 총기 난사로 1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150만 명의 파리 시민이 참석한 추도식에는 저마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주 슈이 샤를리)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이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구호가 됐다.2020년 5월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 사용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다. 백인 경찰관이 플로이드의 목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짓눌렀고, 플로이드는 20번 넘게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쳤지만, 경찰관은 요지부동이었다.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벌어졌다. BLM은 인종 차별 반대 캠페인의 상징어로 자리 잡았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석 달도 안 돼 전국적 퇴진 운동에 직면했다. 지난 주말 미국 1300여 개 도시에서 150개 단체, 60만 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손을 떼라’(Hands Off). 사실상 탄핵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한 무차별 관세부터 반이민 정책, 공무원 대량 해고는 물론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를 옹호
‘개미 박사’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학부 석좌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 출신이다. 최 교수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에는 식물학과와 미생물학과가 따로 있었다. 최 교수는 유학 준비 중 동물학과, 식물학과라는 명칭을 쓰는 대학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동물학과라는 이름이 너무도 싫었다는 그는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 식물학과는 환경생물학과로 바꾸자는 제안서를 만들어 지도교수인 조완규 자연대학장을 찾아갔다. 학과명 변경은 그때 성사되지 않았지만 조 학장이 서울대 총장이 된 1990년대 초 이뤄졌다.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로 개명했지만, 식물학과는 생물학 전공의 모과가 되겠다는 욕심에 환경생물학과 대신 생물학과를 택했다. 자연대 입시 성적 최하위였던 동물학과는 분자생물학과로 이름 하나 바꾼 덕에 단박에 물리·화학과에 이어 3위로 뛰어올랐지만, 반대로 생물학과는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박혀 최하위로 추락했다고 한다.사회 흐름에 맞춰 대학 학과명도 진화한다. 학과명만 잘 바꿔도 신입생 유치와 졸업생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지금 신소재공학과로 통합되기 전 연세대 세라믹공학과의 전신은 요업공학과였다. 이 역시 학과명 변경 하나로 공대 꼴찌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설립 이후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채광학과에서 광산학과로, 이후 자원공학과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양대 유기나노공학과(전신은 무기재료공학과)처럼 개명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요즘 대학 학과명의 유행어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전국 대학 AI 관련 학과는 2020년 9개에서 지난해 146개로, 학생 수는 690명에서 1만4000여
2차 대전 후 세계 질서를 결정한 이벤트는 1945년 2월 크림반도 남부 휴양도시 얄타에서의 3국 정상회담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모였다. 그 유명한 사진 속에는 루스벨트가 가운데에, 처칠과 스탈린이 좌우에 앉았다.그 구도를 현대로 이어보면 정중앙은 미국 대통령, 처칠 자리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한·일·호주 등 미 동맹 정상들이 같이 앉는 긴 벤치, 스탈린 자리는 푸틴과 시진핑, 김정은, 그리고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 정상들이 함께 앉는 짧은 벤치로 구성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좌석 배치에 변화가 생겼다. 얄타 회담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얄타의 한 갤러리에 전시된 ‘얄타 2.0’이라는 미술 작품에선 푸틴을 정중앙에, 트럼프와 시진핑을 각각 그 옆자리에 앉혔다.이 작품에서 트럼프는 자유 진영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는다. 푸틴, 시진핑과 다를 바 없는 권위주의적 인물이자, 오히려 그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린란드와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미국이 보인 모습을 두고 누가 미국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하겠는가. 트럼프는 “적보다 친구가 더 나쁘다”며 동맹국에 더 가혹하게 관세 폭격을 퍼붓는다. 반면 북·중·러·이란 등 ‘악의 축’은 제 편만은 확실하게 챙긴다.미국이 인심을 잃는 통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힘의 공백이다. 그 틈을 비집고 균열을 더 넓히려는 게 중국이다. 시진핑은 얼마 전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지난해 20여 명에서 올해
연금 개혁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2004년 일본 연금 개혁의 주역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모토는 “권위(authority)는 작가(author)에게서 나온다”는 말이다. 리더는 가장 먼저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자기 언어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이즈미가 일본 국민에게 던진 연금 개혁의 명제는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많으면 망한다. 따라서 더 내고 덜 받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단순 진리를 밀어붙이는 것이었다.연금 개혁에서 거론되는 방법론이 거의 다 동원됐다.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 등 모수 개혁은 물론 기대여명과 가입자 수에 따라 실질 연금액을 깎는 자동조정장치도 도입했다. 이른바 ‘거시 경제 슬라이드‘다. 고이즈미 연금 개혁의 화룡점정은 공무원 연금 같은 직역연금과 ‘후생연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통합 작업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그의 임기 중 실현되지 못했다. 연금 개혁으로 인기를 잃어 실각하면서 법안이 폐기됐다. 그러나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이를 되살려 통과시켰다. ‘100년 안심 플랜’이라는 일본 연금 개혁은 이처럼 정치적 희생을 감수한 리더십과 정권을 넘어선 국가 과업 완수 의지로 이뤄졌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혁 과정에도 정치 명운을 건 절박함이 가득하다. 마크롱은 집권 1기 연금 개혁이 노조 반발로 실패한 뒤 2기 집권 때 또다시 밀어붙여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개혁안을 관철했다. 여론 70% 반대와 의회 반발에 막히자 의회 동의 없이 정부 단독 입법을 가능케 한 프랑스 헌법 특유의 조항까지 가동했다. “연금 개혁으로 떨어진 인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단기 여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얼마 전 구글의 범용인공지능(AGI) 모델 제미나이팀 전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AGI를 향한 마지막 경주가 시작됐다. 이제 우리의 노력을 극대화해야 할 때다.” 그는 그러면서 사무실 근무와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최소 주 5회 사무실 출근과 함께 주당 60시간이 생산성의 최적점이라고 했다. 차고에서 시작해 100조원대 부호가 된 전설의 개발자가 업무 완성도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몰입이다.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하면 ‘워라밸’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적잖다. 그러나 그들이 일궈낸 혁신의 원동력은 열정과 집중력이다. 직원들은 프로젝트 고비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오로지 일에만 매달린다. 빨랫거리는 사무실 문 앞에 내놓으면 알아서 처리해준다.일론 머스크는 ‘서지(surge)’라는 극한의 몰아치기 미션을 종종 발동한다. 한 번은 스페이스X의 스타십 부스터를 발사대에 쌓기 위해 토요일 새벽 1시에 서지를 건 적도 있다. 플로리다, LA, 시애틀 등 동·서부 각지에서 텍사스주 최남단으로 500여 명의 직원이 모여들었다. 호텔 방을 못 구해 에어매트리스에서 자면서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일을 끝냈다. 물론 직원들에게 상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불응한 사람은 당연히 해고다.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이런 광기에 가까운 긴박감을 통해 직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하드코어’ 정신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K엔비디아 발언이 논란이 됐다.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 70%는 민간이 가지
도널드 트럼프 1기, 그와 앙숙이던 서방 지도자는 단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다. 트럼프는 메르켈이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악수도 하지 않았다. G7 회의 때 메르켈이 탁자를 두 손으로 누르며 트럼프에게 대들고, 트럼프는 앉아서 팔짱을 낀 채 응수하는 유명한 사진은 독일 총리실에서 흘린 것이다. 메르켈은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자신과 회담할 때 시빗거리를 찾으려고 할 때만 귀 기울이는 모습이었다고 썼다.트뤼도는 유럽 정상들과 대화 중 ‘트럼프 뒷담화’ 동영상으로 유명하다. 트럼프와 맞서는 강단 있는 이미지가 부각돼 지지율 덕도 봤다. 그러나 트럼프가 귀환한 뒤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라는 조롱과 함께 사임 표명으로 백기를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한 케이스다. 미·북 정상회담 때 지나치게 북한을 옹호한 문 전 대통령을 트럼프 측에선 ‘조현병 환자’로까지 표현했다. 트럼프는 2019년 9월 문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17개 질문을 모두 혼자 답했고,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질문조차 자신이 가로채 답변했다.막장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 트럼프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으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젤렌스키는 복싱 해설을 할 정도로 복싱광인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크라이나 복싱 영웅의 챔피언 벨트를 선물로 들고 갔건만, 점심 대접도 못 받은 채 쫓겨났다.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오라”고 했다. 곧, 두손 두발 다 들 준비가 되면 오라는 얘기다. 훨씬 노골화한 트럼프식 거래주의다. 트럼프를 뜯어말
이번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만큼 흥분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유럽의 중심 독일에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된 덕이다.CDU 연합과, 그들에 이어 2위로 도약한 강성 우파 ‘독일을위한대안(AfD)’이 모두 대표 공약으로 삼은 게 반이민이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 반이민은 우파 문화전쟁인 ‘워크(woke) 타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슈다. 다양성, 약자 배려, 관용이라는 워크 가치와 사회 전통 규범 및 법질서라는 우파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이민 문제는 정치공학적 아젠다이기도 하다. 이민자·난민들은 워크를 추종하는 좌파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워크로 포장한 유권자 수입’, 곧 정치적 이익을 감춘 위선이라는 지적이다.트럼프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좌우 심복 격인 JD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독일에 급파했다. 이들은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AfD 등 특정 정당을 지원사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막연한 고립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타국 정치에도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다는 얘기다. 반이민에서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와 ‘죽이 맞는’ 나이절 패라지의 영국개혁당은 머스크의 지지에 힘입어 5월 지방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트럼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 덴마크 등은 모두 좌파 정권이다.독일 총선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머스크는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독일 노동규제의 치부도 드러냈다. 테슬라 독일
지난해 10월 북한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직후 미국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을 모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적잖았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둘의 과정을 비교해보면 곧 해소된다. 우리의 베트남 파병은 매우 공개적이며 떳떳했다. 파병안부터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장병 환송식에는 연도의 시민들이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며 격려했다. 이들의 파병으로 미군 차출을 막고, 경제 성장을 위한 씨앗 자본과 군 전력 현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반면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투입은 위장으로 일관돼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이나 6·25전쟁 때 중공군과 달리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군 지휘 체계에 편성됐다. 정확히 말하면 파병이 아니라 ‘용병’이다. 북한 군인에게는 극동 지역 토착민으로 둔갑시킨 위조 여권이 지급됐다. 포로로 잡힐 상황에 처하면 수류탄을 얼굴에 터트려 자폭하고, 전우 시체의 얼굴 부위도 태우도록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북한은 대외적 은폐뿐만 아니라 자기 병사들도 새빨간 거짓말로 속이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일보의 북한군 포로 병사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유학생으로 훈련 받으러 간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한다. 전장에 투입돼서도 우크라이나 무인기 조종사들을 전부 한국 군인으로 알았다. 부모님은 지금도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도 했다.북한이 군대 투입을 숨기는 이유는 우선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의 정면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보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병사 1인당 월 2000
사우디아라비아의 연중 평균 기온은 26도, 수도 리야드는 최고 54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열사의 나라’라고 하는 이곳에서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동계 스포츠는 빙상과 설상 종목으로 이뤄진다. 빙상 경기야 실내 스케이트장을 지으면 된다고 하지만, 문제는 설상 경기에 필수적인 눈이다. 사우디 동계 아시안게임 대회 장소는 70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의 산악 지대인 트로제나의 스키 리조트다. 해발 1600m 고원지대인 이곳은 겨울에 기온이 0도 밑으로 떨어져 눈이 내린다고는 하나, 스키장을 운영하기에는 턱도 없다. 당연히 대량의 인공눈이 필요하다.36㎞ 길이의 스키 슬로프는 물에 남아 있는 염류를 제거하는 담수화 물탱크로 파우더를 생산, 조성한다.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상 첫 100% 인공눈으로 치러진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는 수영장 800개를 채울 정도인 2억2200만L의 물이 소요됐다. 400여 개 제설기를 가동하는 데 막대한 전력이 쓰였다.환경단체는 물론 유명 스키 선수들도 사우디 대회를 놓고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사우디의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은 동계 올림픽 유치 시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향후 개최지를 겨울 평균 기온 0도 이하인 곳에 국한할 조짐이다.동계 아시안게임은 개최 희망지를 찾지 못해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먼저 손을 들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우디의 노림수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독재자 빈 살만 왕세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스포츠 워싱’이 그 하나다. 사우디 내부적으로 더 큰 이유는 산업 다각화다. 정유산업 일색에
전 세계적으로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를 차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선 곳은 역시 미국이다. 연방 의회가 정부 기관 기기에서 아예 쓰지 못하도록 ‘딥시크 금지법’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미국 의회 대응은 신속한 데다 일사불란하다. 딥시크를 통해 중국으로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나오자마자 공화·민주 양당 의원이 초당적 협력으로 공동 발의했다. 미국 의회는 예산안 처리를 놓고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굳건히 손을 잡는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에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선업 강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딥시크처럼 중국으로 정보 유출 의혹이 제기된 틱톡의 강제매각 법안 또한 초당적으로 처리했다. 2차 대전 후 민주당 해리 트루먼 행정부 때 야당인 공화당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의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처럼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이 대목에서 소환되는 것이 간첩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98조 개정 건이다. 지난해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해외 블랙 요원 정보 유출 사건과 ‘공산당원’ 중국인 유학생의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일대 불법 드론 촬영 사건에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현행 간첩죄가 ‘적국’인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탓인 게 알려지면서 간첩죄 범위 확대에 대한 여론이 일어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
아베 신조가 총리 때인 2019년 2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아베 총리, 농담이죠?’ 일본 언론이 심기가 비틀어져 이렇게까지 조롱한 일은 아베의 도널드 트럼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이었다.그 며칠 전 트럼프는 백악관 마당에서 기자들에게 “아베가 일본을 대표해서 나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했다. 일본 의회에서 추궁당한 아베가 노벨상 추천은 50년간 미공개가 원칙이라며 언급을 피하자 “그럼 보도가 사실이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아베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며 부인하진 않았다.일본 내 여론이 들끓은 이유는 국제 평화는커녕 갈등을 조장하는 트럼프 같은 부적격자를 추천해 전 세계로부터 망신을 샀다는 것이다. 기실 아베의 후보 추천은 트럼프가 먼저 요청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 이후 그해 8월 트럼프가 아베에게 전화해 후보 추천을 타진했다. 아베는 트럼프와 통화하기 위해 후지산 인근에서 여름휴가 중 도쿄로 급히 돌아왔다.얼마 전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지난달 27일 추천서를 냈고, 지난 3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함께 조셉 윤 주한 미 대사대리와 오찬을 한 자리에서 미국 측에도 알렸다고 한다. 박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표, 김민석 최고위원과 수첩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불거졌다. 수첩에는 ‘You know what Trump wants(트럼프가 원하는 걸 알잖냐)’라는 글귀와 (백악관 보고 예정), (당분간 미공개) 같은 노벨상 추천 관련 메모, 앤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흘이 멀다고 한·미 동맹을 언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직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날에도, 어제 국회에서 신임 미국 대사대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한·미 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진영 일원’을 입에 올렸다.그런 이 대표의 머릿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문건이 하나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낸 ‘한국의 정치 위기: 계엄과 탄핵’ 보고서다. CRS는 한국의 국회입법조사처와 비슷한 성격의 기구이나 그 위상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111년의 역사를 지닌 미 의회의 공식 싱크탱크로, 800여 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만드는 보고서는 의원들의 입법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 CRS의 보고서가 이 대표를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내용이 이렇다. “한국의 조기 대선 시 법원 판결 시기가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부패, 선거법 위반, 대북 불법 송금 연루 등의 혐의로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사건에서 작년 11월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되는 유죄를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다뤘는데, 만일 당신이 미 의원이라면 어떤 부분이 가장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렇다. ‘대북 불법 송금 연루’, 곧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이다. 나머지도 중범죄지만 이 건은 미국 내에서도 형사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대량 현금(벌크 캐시) 대북 송금은 안보리 결의는 물론 미국의 독자 대북 제재 행정명령에도 명백한 위반이다.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 금지는 물론 징역형이나 벌금, 자산 몰수까지 취해질 수 있다. 설령 이런
코로나19 사태가 공식 종식(2023년 5월)된 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호흡기 질환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와 곳곳이 난리다. 인플루엔자(독감) 의심 환자 수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다. 소아과는 RSV(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코로나19 환자도 1년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중국에선 HMPV(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약품이 품귀를 빚고 있고, 일본도 독감 환자가 사상 최대다.두 가지 호흡기 질환이 동시 유행하는 것을 트윈데믹, 세 가지는 트리플데믹, 네 가지는 쿼드데믹이며 이를 통틀어 멀티데믹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숨 돌렸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멀티데믹에 휩쓸릴까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상황이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멀티데믹이 도래한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은 ‘면역 부채’(Immunity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런저런 세균을 접하고 이를 견뎌내거나 때로는 아파 가며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항원 바이러스에 맞서 항체가 형성되는 항원항체반응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 완벽에 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면역력을 확보할 기회를 잃었다. 병원균에 노출되지 않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고 후일 ‘병에 걸려야 할 빚’을 안게 됐다는 것이다. 1~2세 영유아가 타깃인 RSV가 3~5세까지로 확산하며 대유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때 1~2세였던 어린이들의 감염이 유예됐다가 지금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독감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멀티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개인위생이다. 마스크를 늘 가까이 두면서 손 씻기, 손을 입·코
‘웃픈’ 얘기지만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놓고 한판 내기라도 벌어진 모양새다. 한은이 지난해 8월 2.1%에서 11월 1.9%로 수정한 뒤 정부는 올 들어 1.8%로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균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말 1.8%에서 12월 말 1.7%로 내려갔다. JP모간은 1.7%에서 1.3%로 0.4%포인트나 떨궜다.탄핵 쇼크를 감안한 하향 조정이지만, 문제는 그 이전부터 이미 1%대 전망이 대세였다는 점이다. 1%의 공포는 역사에서 금방 확인된다. 1954년 집계 이후 성장률이 2% 미만이었을 때는 전쟁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1956년과 1980년 대혼란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그리고 2023년 등 총 여섯 번뿐이다. 특별한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1%대 성장에 그친 것은 2023년이 유일하다. 수출 부진이 주요인이었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가 1995년 이후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내려가는 ‘5년 1% 하락의 법칙’을 얘기했는데, 1% 저성장 시대의 지옥문이 열린 것 같아 께름칙하다.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6% 이상의 고도성장을 맛본 뒤 50년 이상 지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진 곳이 일본과 스페인, 마이너스로 추락한 곳이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다. 이 다섯 나라 중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 협정이라는 유례없는 극도의 외압에 기세가 꺾인 일본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곳은 스스로 무너졌다. 결국 유럽 재정위기까지 촉발한 ‘PIGS’ 4개국이다.성장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도 퍼주기 복지 정책으로 나라 곳간을 구멍 내고 유로존 전체에 위기를 불러왔었다. 이 중 맏형 격이 이탈리아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영국을 앞서 세계 5위였던 이탈리
‘조상제한서.’ 1998년 외환위기 이전 5대 시중은행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줄임말이다. 은행 서열 기준으로, 이 중 꼴찌가 서울은행이다.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병해 서울신탁은행이 됐다가 후에 행명을 다시 서울은행으로 고친 이곳은 직장 파벌의 한 전형이었다.서울은행(1959년)보다 9년 늦은 1968년 한국신탁은행 설립 때, 서울은행에서 행원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직장을 옮길 때 대부분 그렇듯 더 좋은 봉급 조건으로 이직했다. 1976년 합병하고 보니, 서울은행 시절 동기 간 봉급 격차는 물론 선후배 간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서울파와 신탁파 간의 파벌 싸움은 이렇게 호봉 문제로 시작했다. 행장 선출 과정에서 각 진영 간 투서가 난무하는 이전투구가 수십 년간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암투가 극에 달해 3년간 행장이 세 차례나 바뀌는 일까지 있었다. 내분에 시달리다가 결국 2002년 하나은행에 매각됐다.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 간 합병은 금융 파벌의 또 하나 씨앗이 됐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두 국책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KB에는 ‘채널’이란 은어가 있다. 1채널은 국민은행 출신, 2채널은 주택은행 출신을 일컫는 말이다. 파벌 싸움을 막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수장에 앉혀 놨는데, 이들이 파벌 분쟁에 휘말려 한꺼번에 불명예 퇴진하는 사태까지 있었다.우리은행은 더하다.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우리은행 전신인 한빛은행으로 출범 시 두 은행의 자산은 각각 53조여원과 48조여원으로 대등한 수준이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합병 추진 사무실을 방문해 “파벌 싸움이 벌어지면 당사자들을 모두 쫓아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참 껄끄러운 사이였다. 1979년 6월 도쿄 G7 회담 후 카터가 서울에서 박정희와 만났을 때다.미국 측은 한·미 간 초미의 쟁점인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카터를 자극하지 말아줄 것을 한국 측에 당부해 놓은 터다. 그러나 박정희는 본인이 수려한 필체로 직접 쓴 장문의 서한을 아무 말 없이 카터 앞에 내놨다. 카터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고, 박정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버릇이다. 박정희는 이후 45분간 미군 철수 불가론을 폈다.분기탱천한 카터는 옆방으로 박정희를 불러 “동맹국 정상 간 대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언쟁을 벌였다. 청와대를 나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차 안에서 참모들에게 박정희를 맹비난하면서 미군 철수를 강행하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밴스 국무장관과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등이 극력 반대했다. 이들이 미국 대사관저 앞에서 대통령 전용 리무진을 10분 이상 세워 놓고 논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 전문가 본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에 나오는 대목이다.카터는 결국 미군 철수론을 거둬들였고, 박정희는 100명 가까운 반정부 인사를 석방했다. 카터는 이 과정에서 박정희에게 한 방을 먹인다. 700개 가까운 한국 내 핵무기를 250개로 감축한 것. 1957년 아이젠하워 때부터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가 줄기 시작하더니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인 1991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남한 완전 비핵화를 선언하기에 이른다.박정희는 기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닉슨의 미 7사단 철수 이후 프랑스를 파트너 삼아 독자 핵무장을
전쟁에서 최전선의 소모적 전력을 일컫는 말이 총알받이다. 비하적 표현으로는 ‘대포 사료’, 좀비 게임물에서 빌려 온 ‘고기 방패’란 용어도 있다. 하층민, 신병 몫인 총알받이의 대체 집단이 죄수다. ‘형벌부대’로도 불리는 죄수부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기원전 209년 진시황 사망 이후 반란이 일자 병력이 부족해진 진나라에서 죄수부대를 가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란군을 토벌하면 죄를 사면하고 고향으로 돌려준다는 말에 죄수부대는 강한 전투력을 발휘해 반란 진압에 기여했지만, 약속과는 달리 모두 생매장당했다고 한다.현대전에서 죄수부대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2차대전 중 독소전쟁 때 스탈린의 지시로 만들어진 소련군의 슈트라바트다. 죄수 병사는 소총 한 정과 최소한의 탄약만 지급받고는 최일선에서 돌격해야 했다. 뒤에선 독전관이 기관총을 뿜어대고 있기에 후퇴할 수도 없다. 돌격 10회를 수행하면 사면해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었다. 200일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100만 명의 병사가 죽었고, 그중 1만3000명은 ‘비겁자’로 처형됐다. 독일이 소련 죄수부대를 본떠 만든 게 ‘형벌대대 999’다. 이를 소재로 한 1960년대 독일 흑백영화도 있다.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을 통해 죄수부대를 운영했다. 프리고진이 교도소를 방문해 6개월간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10만루블(약 135만원)의 보너스와 사면을 내걸고 살인범 중심으로 죄수 용병대를 모집했다.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거된 뒤 러시아군의 전력 공백을 파고든 게 바로 북한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롤모델 중 한 명은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다. 샌더스는 미국 좌파 정치인의 대명사로, 자칭 민주사회주의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도 샌더스에 비유되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엔 그 인물이 샌더스와는 도저히 양립할 것 같지 않은 부류로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다. 이 대표는 외신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의 트럼프’로 불린다고 했다.트럼프와 이 대표는 외견상 닮은 구석이 많다. 정치 언어에서부터 극렬 팬덤, SNS 선전술, 그리고 극도의 자기중심적 성품까지. 이 대표는 트럼프가 사법 리스크를 뚫고 대권을 잡은 데 무엇보다 고무됐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법 리스크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의 세 가지 사건은 민간인 신분 때 일(포르노 배우 입막음 사건)과 2020 대선 관련 사건들이다. 반면 이 대표의 8개 사건은 모두 공직자로서 기망, 독직, 유용 등 불법을 저지른 혐의다. 어쨌든 사법 리스크를 돌파한 트럼프는 그에게 희망이다.정치 콘텐츠에서도 이 대표는 한국의 트럼프임을 강조하고 싶을 거다. 그가 ‘먹사니즘’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처럼 트럼프 역시 미국인의 먹고사는 문제로 유권자들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한 꺼풀만 벗겨보면 먹사니즘과 트럼프노믹스 2.0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트럼프노믹스 2.0의 요체는 파격적 감세와 규제 철폐다. 트럼프는 1기 때 법인세율을 종전 최고 35%에서 21% 단일세율로 낮췄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유로존을 능가하고 최저 수준의 빈곤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기업들을 신명 나게 뛰게 한 감세 효과였다. 트럼프 2기 때는 법인세를 20%로 더 낮추는 것은 물론 미국 내 사업장에는 15%까지 내
제왕적 대통령제는 미국의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가 1973년 쓴 같은 제목의 책에서 유래했다. 그가 전형으로 지목한 인물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이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특보를 맡을 정도로 민주당 계열인 슐레진저는 민주당 대통령들에게는 관대했다. 슐레진저의 당파성 탓에 ‘제왕적 대통령’은 상대편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쟁 수단으로 쓰였다.우리도 장기 집권한 이승만과 박정희 등에 이 딱지를 붙였다. 독재에 대한 트라우마로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바꾼 87체제 이후에도 이 표현은 개헌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첫 번째 사유로 지목됐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관여하는 임명직 자리가 7000개쯤 된다고 한다. 대법원, 감사원 등 헌법기관도 포함된다. 예산권, 법안 제안·거부권 등에 더해 집권 여당의 공천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도 있었다.그러나 지금 대통령 권한을 국회와 비교하면 과연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의원들은 미국 영국 등에선 이미 사문화한 불체포특권,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면책권으로 방탄을 두른 뒤 아무 견제 없이 4년 임기를 꼬박 보장받는다. 미국 하원 임기(2년)보다 두 배 길다. 영국 오스트리아 대만 아이슬란드 등에 있는 국민소환제, 프랑스 등에 있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도 한국엔 일절 없다.국회는 대신 국정감사권으로 기업인을 볼모 삼아 구악질을 일삼는다. 과반 의석만 차지하면 장관,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중앙지검장도 멋대로 탄핵할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법이라곤 파업 조장법, 양곡법 등과 같은 반시장법, 기업인을 365일 국회로 불러대
미국의 고전적 정치인 풍자 유머다. 정치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보디 랭귀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코를 만지고 있을 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귀를 잡아당기거나 가슴팍을 긁적이고 있을 때도 그렇다. 정치인의 입이 움지럭거리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정치인 불신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세계적 여론조사 기업 입소스가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직업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총 18개 대상 직업군 중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과학자였고,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직업은 예상대로 정치인이었다.한국의 정치인 불신은 유독 심하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회 분야별 신뢰도 조사에서 정치인은 꼴찌인 것은 물론 ‘처음 만난 사람’보다도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지목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생 1만3863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 인식 설문조사에서 정치인 신뢰도는 2.05점(4점 만점)으로 ‘인플루언서’(2.23점)보다도 낮았다. 미래 세대에게 정치인은 유튜버보다 못 믿을 존재다.계엄·탄핵 정국에서 한국갤럽이 조사한 정치인 신뢰도 조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5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우 의장이 67세의 나이에도 경찰과 계엄군이 봉쇄한 국회 담벼락을 타고 넘어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 계엄 선포 2시간 만에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을 끌어낸 리더십을 평가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낸 데 대한 국민적 신뢰도다.이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뢰도다. 현 정국 최대 수혜자인 그의 신뢰는 41%인 데 반해 불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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