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A씨가 새벽 3시께 자신의 병원에서 스스로에게 투약할 마약류를 찾으러 가는 모습. /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의사 A씨가 새벽 3시께 자신의 병원에서 스스로에게 투약할 마약류를 찾으러 가는 모습. /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손님들에게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한 의사와 병원 관계자 등이 대거 경찰에 붙잡혔다. 해당 병원은 전 야구선수 오재원 씨와 강남 '람보르기니 남' 홍모 씨도 방문해 마약을 투약받은 곳이다.

13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60대 의사 A씨를 구속 송치하고, 간호조무사 등 의원 관계자 1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병원에서 수면이나 환각 목적으로 마약을 불법 투약받은 손님 100명도 불구속 송치됐다.

병원 관계자들은 2021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병원을 찾은 손님들에게 수면마취제 계열의 마약류(프로포폴·레미마졸람)나 전신마취제(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을 한 것처럼 꾸민 뒤, 실제로는 의료 목적과 무관하게 마약을 투약해주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1회 투약 시 20~30만원을 받는 방식으로 총 1만7216회에 걸쳐 투약해 41억4051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병원은 오로지 마약 투약자들을 위해 일요일 영업을 하기도 했다.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는 '생일 기념'으로, 감옥에서 출소한 손님에게는 '출소 기념'으로 '서비스 투약'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도 벌였다.
의사 A 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작성한 장부에 적힌 내용. 이들이 '생일 기념', '출소 기념'으로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마약을 투약해 준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의사 A 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작성한 장부에 적힌 내용. 이들이 '생일 기념', '출소 기념'으로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마약을 투약해 준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이 병원에서 꾸준히 마약류를 투약받은 손님들은 심각한 의존성을 보였다. 투약자 100명 중 83명이 20~30대였고, 이중 하루에 28회 연속으로 마약을 투약받거나 하루에 1000만원을 결제한 사례도 있었다. 1억 원 이상을 쓴 손님도 12명에 달했다. A씨 의원에서 마약을 꾸준히 투약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손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A씨는 손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마약을 '셀프 투약'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야심한 시간에 자신의 집이나 병원에서 스스로 또는 간호조무사들을 통해 본인에게 총 16차례 투약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에토미데이트가 사용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A씨 의원은 범행 초기엔 프로포폴만을 사용했지만 2023년 5월부터는 레미마졸람(마약류)과 에토미데이트(전문의약품)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경찰은 A씨가 병원에 공급되는 프로포폴의 양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단속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에토미데이트를 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효능이 비슷하지만,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아 남용 사례가 많다. 이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2월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A씨의 범죄 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현금 8304만 원을 압수하고, 부동산 등 33억2,314만 원 상당의 재산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기소 전 추징보전 결정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용 마약류는 적절한 용량으로 사용해도 중독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며 "에토미데이트의 불법 유통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다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