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로 잠긴 방, 그 안에 남겨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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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옥미나의 아트하우스 칼럼
영화 <콘클라베>
피터 스트로겐의 각색으로
82회 골든글러브 각본상 수상
2.39:1의 화면비로
인물의 내면을 회화적으로 담은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영화 <콘클라베>
피터 스트로겐의 각색으로
82회 골든글러브 각본상 수상
2.39:1의 화면비로
인물의 내면을 회화적으로 담은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해 소집하는 비밀회의다. 교황 선종에 맞춰 전 세계에서 모여든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환경에서 과반수의 표를 차지하는 인물이 나올 때까지 투표를 거듭하는 것.
후보 지명도 없고, 공약 발표나 요란한 선거 운동도 당연히 없다. 숙소로 사용되는 성녀 마르타의 집과 시스티나 성당을 오가는 추기경들의 고요한 며칠이 전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수단을 입은 평균 70세의 남성들이 경건하게 투표를 반복하는 과정이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출발한다. 그는 BBC에서 이력을 시작해 정치 전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그의 소설들은 TV 드라마 혹은 영화로 제작됐다. 해리스는 가톨릭과 콘클라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교황을 꿈꾸는 이들의 야심과 비밀, 음모와 야합, 추문과 몰락의 과정을 능숙하게 정치 스릴러로 직조해 낸다.
그래서 얼핏 가톨릭교회의 비밀회의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것 같았던 이야기는 교회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거쳐 마침내 권력과 정치의 본성을 폭로한다.

추기경으로 등치된 탐정 스릴러의 층위에 머물렀던 소설에서 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유려한 영화적 순간을 창조한 것은 전적으로 각본을 맡은 피터 스트로겐의 공이다. 각색 과정에서 주인공 로렌스(랄프 파인즈)의 독백은 휘발됐지만, 인물들의 대사는 훨씬 더 간결하고 명쾌해졌다. 덕분에 원작 소설을 능가하는 영화가 탄생했고, 스트로겐은 82회 골든 글로브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콘클라베는 종교인들을 겨냥한 기획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가톨릭 신자라서 콘클라베를 관람한다면 그 기대는 배신당할 공산이 크다. 신성모독으로 느끼고 불쾌감을 토로할 수도 있겠다. 모든 관객을 혼란에 빠뜨릴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무한 반전’으로 단순화하지 말기를. 콘클라베는 이미 110분에 걸쳐 다른 종교와 인종, 동성애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교회 혹은 종교의 미래 생존 전략이라고 웅변했다. 우리는 관념적인 토론을 이미 충분히 들었다. 콘클라베의 놀라운 결말은 우리의 실제 용납과 실천 범위에 대한 기습적인 질문이다.

원작 소설에는 없었지만, 영화에 추가된 마지막 장면. 로렌스가 창문을 열고 광장을 굽어보면, 하얀 옷을 입은 어린 견습 수녀들이 총총히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지난한 콘클라베의 엔딩으로 어린 소녀들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은 우연일 리 없다. 로렌스의 표정이 어땠는지 새삼 궁금하다. 무표정했던가 혹시 희미한 미소를 지었던가. 변화와 미래를 흘깃 엿본 그의 얼굴은 어땠을까.
옥미나 영화평론가
[영화 <콘클라베> 메인 예고편]

▶ 제7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최다 후보,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색상,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 '콘클라베'는 3월 5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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