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 기행 : 스위스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회사 로지텍 (Logitech International S.A.) [SIX: LOG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 전쟁이 혼란을 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데 이어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누구도 봐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지 며칠 만에 뒤집은 결정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대통령측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서 메가톤급 관세 부과 위기 속에서 애플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했습니다.
로지텍의 레이싱 게임용 장비들. 게임 관련 기기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지텍 제공
트럼프의 이런 오락가락 정책으로 앞으로 특정 기업들에 대해서는 관세 무관용 정책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관세 제외 제품에는 스마트폰, PC, 태블릿,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저장 장치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실·집집마다 하나 쯤은 있는 로지텍
투자 전문가들은 이런 수혜주 찾기에 분주합니다. 최근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IT 하드웨어 부문에서 애플과 로지텍이 관세 면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놔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그렇다쳐도, PC 주변기기를 만드는 로지텍이 거론된 것은 의외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는 로지텍 K120 키보드와 M110s 마우스. /최종석 기자
로지텍은 마우스와 키보드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한국 미국 등 세계의 가정과 사무실에 로지텍 제품이 한 개쯤은 다 있을 것입니다.
로지텍은 1981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회사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 만난 스위스의 다니엘 보렐과 이탈리아의 피에를루이지 자파코스타가 창업자입니다. 이후에 이탈리아 엔지니어 마리니가 합류했습니다.
로지텍 P4 모델은 사실상 최초의 상업용 마우스다. /로지텍 제공
로지텍의 역사가 마우스의 역사일 정도로 이들의 성장은 마우스와 함께했습니다. 로지텍은 일본회사 리코가 요청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우스를 처음 제조했습니다. 이들이 1982년에 만든 P4 모델은 사실상 최초의 상업용 마우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4년에는 최초의 무선 마우스도 개발했습니다.
로지텍은 휴렛팩커드, 컴팩, AT&T와 같은 대기업에 마우스를 납품하면서 사세를 확장했습니다. 볼마우스에 이어 광마우스도 빠르게 내놨습니다. 무선 마우스는 뛰어난 절전 능력으로 배터리가 오래 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지텍의 다양한 제품들. 과거와 달리 색상이 많이 다양해지고 있다. /로지텍 제공
마우스로 큰 성공을 거둔 로지텍은 다른 PC 주변기기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웹캠, 키보드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고 있습니다. 화상회의 및 스트리밍용 웹캠 시장에서도 70% 이상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며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로지텍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비대면 근무 활성화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웹캠을 비롯한 PC 주변기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2021년 중반 주가는 110스위스프랑을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팬데믹 때 급등한 주가...다시 올 수 있을까
게이밍 분야도 로지텍이 가장 강점을 가진 분야입니다. 게임용 마우스, 키보드뿐만 아니라 레이싱 게임용 페달과 휠, 마이크 등 다양한 장비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로지텍의 레이싱 게임용 페달. /로지텍 제공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로지텍은 주목받고 있습니다. AI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시가 필요합니다. 로지텍은 영상, 음성, 문자 등 인간과 AI를 연결하여 주는 장치, 인터페이스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생성형 AI는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영상, 음성 등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멀티모달 모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이런 다양한 연결 장치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지텍의 게이밍 마이크. /로지텍 제공
로지텍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2024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실적은 매출 43억달러, 영업이익 5억8700만달러였습니다. 이달 말 발표 예정인 2025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실적은 매출 45억4000만~45억7000만 달러, 영업이익 7억5500만~7억7000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기업 간 거래(B2B) 비중이 44%이고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비중이 56%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최고 점을 찍었던 로지텍 주가. 최근 다시 상승세였다가 관세 역풍 우려로 하락했다. /구글 캡쳐
스위스 로잔에 본사가 있는 로지텍은 스위스 증권거래소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주가는 지난 17일 58.56스위스프랑에 마감했습니다. 2월 초 90스위스프랑을 오가던 주가는 관세 문제가 불거지며 대폭 하락했다가, 관세 제외 가능성이 불거지며 지난주 소폭 반등했습니다.
로지텍은 중국 쑤저우에 제조 시설을 40%가량 두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최근 내놓았던 2026회계연도 실적 추정치를 일단 철회했습니다. 당분간 애플처럼 관세 유예의 호재를 누릴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