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도 모르던 소년공…인권변호사로 정치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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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걸어온 길
중앙대 시절 사법고시 합격
MB·朴과 대립하며 '유명세'
중앙대 시절 사법고시 합격
MB·朴과 대립하며 '유명세'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 후보는 청소년기 내내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었다. 그는 6년 동안 여섯 곳의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며 고무와 가죽 제품, 시계, 냉장고 등을 만들었다. 1978년 고입 검정고시, 1980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 82학번으로 입학했다.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1989년 사법연수원(18기)을 수료했다.
연수원 시절 들어간 스터디모임 노동법학회에서 활동하며 그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성적이 좋아 판·검사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성남의료원 설립 운동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2006년 총선과 2008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한 차례씩 낙선한 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부터 성남의료원 설립, 청년배당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했다.
이 후보가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것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다. ‘흙수저 서민 정치인’으로서 기득권 재벌과 정치세력을 청산하겠다고 외쳤다. 손가락 혁명군과 개혁의 딸이란 견고한 지지층이 생긴 것은 이 무렵이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이 후보는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그는 캠프 해단식에서 “아무 준비 없이 시작했는데 이만큼 잘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하겠죠”라며 지지자들을 위로했다.
202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이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포인트 차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낙선 이후 이 후보는 민주당 대표를 맡아 이념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내내 이 후보 뒤에는 ‘피고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대장동 개발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다섯 번 기소됐다. 작년 1월 부산에선 목을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고양=최해련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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