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적 선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상운임 담합 제재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해운법상 허용되는 공동행위더라도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공정위가 제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대만 국적 해운사 에버그린마린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는 2022년 HMM, 팬오션,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국내외 해운사 23곳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동남아시아 항로에서 120차례 운임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에버그린에는 33억9900만원이 부과됐다. 공정위 처분은 1심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에버그린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운법 제29조는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도 공동행위 내용이 부당하게 요금을 인상하는 등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명하고 이를 공정위에 통보하도록 규정한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에버그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동행위에 관해서는 해수부 장관이 부당성 여부를 판단해 규제할 문제일 뿐 공정위가 해운법에 따라 필요한 정도를 넘는다고 주장하며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운법은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행위가 부당하게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고 있다”며 “적어도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에 모순·저촉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해수부 장관과 공정위가 모두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에버그린 외에 과징금 처분을 받은 나머지 22개 해운사의 소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들 사건은 아직 2심 판결이 나지 않았다.

황동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