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21일(현지시간) 오후 1시쯤 진행한 미국 국채 20년물 경매가 끝나자 월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낙찰 금액 대비 응찰 금액의 규모가 평소보다 적었던 데다, 수요 부진으로 발행 금리도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연 5.047%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미국 국채 금리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가 202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연 5%를 넘어선 것도 이 영향이다.
TD 증권의 금리 전략가 푸자 쿠무라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에서는 만기 장기물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 경고했다.

美 재정 나아질 기미 없어



이날 미국 20년물 국채 금리에 대한 투자자 수요가 부진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무디스가 재정적자 증가를 이유로 미국 신용등급을 기존 최고등급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1’으로 강등하면서 잔뜩 예민해진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 소식까지 들어서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26일부터 의회가 메모리얼 데이 휴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트럼프 감세안 연장·확대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하나의 아름다운 법안’(메가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에 따라 하원 처리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 소득세율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와 자녀 세액공제 확대 등 2017년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도입돼 올해 말 만료될 예정인 주요 감세 조항을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팁·초과근무수당 면세, 미국산 자동차 구입을 위한 대출이자 세액공제 신설도 포함됐다.

미국 의회 합동조세위원회(KCT)는 메가 법안 초안을 분석한 결과 법안 통과 시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 적자를 2조5000억달러 이상 증가시킬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만큼 연방정부 지출이 수입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한 국채 등에 따른 부채는 GDP의 약 124%에 달한다. 이자 비용은 연간 8800억달러 수준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몇 년 내에 연간 이자 비용이 1조 달러를 넘어 국방비와 메디케어 지출을 모두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채 공급 증가로 시장 부담”



재정적자 확대는 곧 국채 발행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에 채권이 많이 풀리면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에 대한 신용 위험도 함께 올라가면서 이를 우려한 투자자들의 경매 참여가 부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이번 경매에서 국채 인수 의무를 지난 미국의 대형 금융 기관들이 매입한 규모는 발행 물량의 16.9%로 최근 평균인 15.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해외 중앙은행, 외국 국부펀드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마크 해펠레는 이날 “공화당 (감세) 법안이 향후 10년간 미국의 36조 달러 국가 부채에 수조 달러를 추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국채 공급 증가로 이어져 시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 악순환 오나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초고율 관세 부과를 유보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2025년 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채 30년물과 10년물 금리는 모기지와 같은 소비자 대출의 기준 금리다.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침체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는 이날 “금리 상승으로 인해 지난주 모기지 신청 건수가 5.1%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국채금리 상승과 경매 부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도 주목된다. 4월 상호관세를 유예한 결정적 계기도 국채금리 급등이었기 때문이다.
BMO 캐피털 마켓 측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국채 시장을 워싱턴 정치에 대한 투자자 신뢰의 척도로 본다면 미 국채 30년물 금리가 오른 것은 분명히 심각한 신호”라고 경고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email protected]